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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은 죽은 자의 것이었다

천지인야 2013. 2. 7. 22:13

금관은 죽은 자의 것이었다
1973년, 경주 대릉원에 있는 천마총에서 역사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다. 1500년 동안 땅속에서 침묵하고 있던 유물들 속에서 신라 황금 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금관이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발굴될 당시 금관은 우리의 상식과는 다른 모습을 띠고 있었다. 고깔모양의 금관이 얼굴을 덮고 있었던 것이다.
 
     세부설명
  1. 황금의 나라, 신라

1921년 경주의 노서동 신라고분의 발굴이 이루어졌다. 무덤은 황금의 지하 궁전이었다. 비취옥돌과 금장식을 단 화려한 금관뿐 아니라 황금팔찌, 금귀걸이, 말에 쓰이는 마구장식까지도 황금으로 치장을 했다.


2. 금관의 무게

금관의 무게를 따져보면 1Kg이 넘는다. 평상시에 이런 금관을 쓰고 다닐 수 있었을까. 또 허리띠는 무게가 4Kg에 이른다. 금동신발도 평소 신고 다니기에는 굉장히 크다.


3. 금관의 주인

귀한 금관과 함께 무덤에 묻힌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두개골과 치아를 이용해 성별과 나이를 추정할 수 있었다. 또 허리띠의 글자에서 그 주인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했다.


4. 금관의 의미

금관의 관 테두리 위로 솟아있는 장식은 사슴 뿔을, 가운데의 세움 장식은 나뭇가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달린 비취 옥과 금장식은 바로 나무열매와 나뭇잎이다. 신라금관의 이런 장식은 무엇을 상징하려고 한 것인가.


5. 평소에 쓴 모자

금관과 함께 출토된 유물 중에 고깔형의 모자와 새 날개 모양의 장식이 있다. 이 모자는 고구려 무용총 벽화의 사냥하는 고구려인들이 쓰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백제의 무덤에도 같은 형태의 모자가 나온다. 삼국시대에는 모자를 쓰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6. 지방에서 발견된 금동관

금동관은 금관처럼 지위와 권능의 상징이었다. 이 금동관이 경주 인근이 아닌 다른 지방에서도 발견된다. 그리고 금동관이 발견된 무덤은 경주의 무덤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