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밤의 흐린 달빛을 밟고
한 무리의 후조가 비상한다.
서풍은 나래 위에 짐으로 내려 앉고
먼 강안(江岸) 갈대 밭 살 부딪는 소리는
먼 고향의 회억(懷憶)을 부른다.
산자(生者)의 몫으로 남겨진 그리움조차
생존의 이유로 가슴에 접어두고
검게 탄 밤 공기를 가르며
무리진 철새가 하늘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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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술을 마시고
차가운 밤 공기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흐린 밤 하늘에 우수(憂愁)가 가득하다.
목울음 내뱉으며
텅 빈 들판을 건너는 철새들...
레테의 강을 건너는 사공의 노질처럼
한참이나 멍한 응시(凝視)를 하늘에 흘리다
이내 사념(乍念)에서 깨어나
어둠과 마주한 허공에 부질없는 담배연기를 흘린다.
삶터의 영역을 찾아 부단한 날갯짓을 해야 하는
철새의 여정과 꿈속에도
생존과 존재를 별리시키는
버지니아 울프의 고뇌같은 것이 존재하고 있었을까?
어두운 밤 하늘을 나는 저 철새의 비행에는 바람이 없다.
내 안의 것은 감추어 둔 채
소유냐 삶이냐를 외쳐며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인간들의 아욕(我慾)이 없다
서로가 공유하는 집합의 틀 안에서
맞대고 의지하며 체온을 나누고
주어진 시간을 겸허히 살아내며
순리를 따라 회귀하는 삶이면 그 뿐...
저들은 상대의 마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 밤이 지나면 동천의 하늘에 또 태양이 뜬다.
찬이슬 풀리는 강가에 모여앉아
저들은 저들만의 대화를 나누겠지.
네가 있기에 나는 행복하다고...
아는 듯 모르는 듯
강물은 무심으로 흘러갈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