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學習/♧ Epi ♤ Story
2500년 전 한반도는 전쟁중이었다
천지인야
2013. 2. 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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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 없는 무덤 남강댐 수몰 예정지인 진주 남강 상류. 댐 공사를 하기 위해 땅을 파 내려가자 2500 년 전의 유적이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110만여 평에 이르는 유적지이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무덤이 하나 발견되었다. 무덤 안에는 2500년의 세월을 견뎌온 인골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발견된 인골에는 머리부분만이 없었다. 2. 화살을 맞고 죽은 무덤주인 머리가 없는 무덤에서 약 100미터 떨어진 곳의 또 다른 무덤이 발굴되었다. 그러나 이 무덤에서는 인골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미 인골은 흙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무덤은 무덤 주인이 왜 죽었는지 그 사연을 알 수 있었다. 바로 화살촉으로 추정되는 돌멩이가 나온 것이다. 3. 전쟁의 흔적 발굴이 진행되면서 무기에 맞아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 무덤은 계속 발견되고 있다. 도대체 2500년 전 진주 남강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런데 마을에서 긴 도랑이 하나 발견되었다. 폭이 약 2미터. 자연적으로 생긴 도랑일까. 4. 전쟁의 원인 왜 전쟁이 일어났을까. 대부분의 전쟁이 그렇듯이 넓은 영토를 확보하려는 영토 싸움이었을까. 애써 담장을 높이 쌓고, 울타리를 치는 사람은 분명히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환호 목책을 세운 진주 남강 마을에도 분명히 외부의 다른 집단이 탐낼만한 것이 있었다. 남강유적 주거지 발굴지로부터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특이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5. 무기의 발달 무덤에서 나온 부러진 화살촉을 통해서 누가 어떤 화살에 맞았는지, 당시 무기수준은 어떠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무덤의 주인이 맞았던 화살촉은 어떤 종류의 것일까. 무덤에서 나온 화살촉은 화살촉 끝이 돌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날카롭다. 6. 송국리 전투 전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남아 있는 곳이 있다. 남강 마을처럼 목책이 있고, 목책 안 마을에서 쌀과 같은 곡식류가 대량 발견되었던 부여 송국리 유적이다. 부여 송국리와 진주 남강유적은 같은 시기로 알려져 있다. 쑥대밭을 만들어버린 송국의 전투는 어떤 상대가 서로 만나 싸운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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