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學習/♧ Epi ♤ Story
천년 전의 벤처, 해상왕 장보고
천지인야
2013. 2. 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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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보고의 청해진 구상 서남해안에 위치한 청해진은 물길이 복잡한 지역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물길을 모르는 사람에겐 항해도 어렵다. 그러나 완도의 물길을 아는 사람에겐 천혜의 요새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이곳은 중국과 일본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장보고는 여기에 다양하고 편리한 시설에 안전한 보호장치까지 설치해 청해진을 최고의 국제 무역항으로 만든다. 2. 최초의 자유 무역인 장보고 청해진의 시설을 보고 놀란 신라 흥덕왕은 장보고에게 청해진 대사라는 칭호를 주어 그의 활동을 인정해 주었다. 이때부터 장보고의 본격적 무역활동이 진행되었다. 그는 당나라의 물건을 일본에 파는 중계무역을 벌인다. 또한 일본과의 국교가 단절된 9세기에는 장보고만이 일본과 교역을 계속 하였다. 9세기는 바야흐로 동서양 교역의 시기 실크로드를 따라온 이슬람,페르시아 물건들은 장보고를 거쳐 신라와 일본으로 유입되었다. 3. 중계무역에서 가공무역으로 장보고는 국가조직과 별도로 움직이던 독립 무역선단이었다. 그는 동아시아 무역질서에 신용거래를 처음 도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여기서 나아가 장보고는 유통무역의 한계를 벗어나기에 이른다. 신라와 일본, 이슬람까지 탐내던 당나라의 독점 수출품목 월주요. 이 자기의 수요가 늘자 장보고는 직접 만들면 수지타산이 맞겠다는 판단을 하여 제작에 들어간 것이다. 월주요는 동아시아 삼국의 무역현장에서 모두 발굴된다. 4. 장보고 선단의 무역활동이 가능했던 이유 이미 9세기에 현대와도 같은 빠른 정보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었던 장보고 무역선단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장보고는 물산이 운송되는 물류창고이자 정보의 집결지인 운하를 최대한 활용해 정보기지를 구축하였다. 극도로 조직화된 장보고 선단은 정보, 금융을 아우르는 종합상사와도 같은 것이었다. 5. 국제 무역을 가능케 한 힘, 재당 신라인 8세기말부터 많은 신라인들이 가난, 골품제도를 피해 당나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자치 조직인 신라방을 거점으로 결집하기 시작하여 특산물 생산과 운하변을 장악하고 9세기에는 당나라 물류를 석권한다. 장보고는 당나라 전역에 흩어져 있던 재당 신라인을 하나로 통합해낸다. 그것이 장보고의 국제무역을 가능케 했다. 6. 미천한 섬사람 장보고 미천한 섬사람, 삼국사기는 장보고를 ‘미천한 섬사람’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장보고는 서남해안 섬에서 태어나 가난과 신분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당나라로 건너갔을 것이다. 당나라는 뛰어난 무예를 갖춘 장보고를 군 관리로 임명했다. 후에 그는 신라인들의 실질적인 구심점 역할을 하는 법화원을 세운다. 그때부터 소규모로 이루어지던 당과 신라, 신라와 일본의 무역이 장보고를 우두머리로 보다 강화되고 대규모화된다. 장보고는 시대를 읽어내는 안목과 그것을 실현시킬 추진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