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學習/♧ Epi ♤ Story
왕건의 훈요십조는 조작되었는가?
천지인야
2013. 2. 7.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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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역의 땅 천안에서 공주로 가다 보면 제법 숨가쁜 고개가 하나 나온다. 바로 차령고개인데, 이 차령고개는 예부터 서울과 호남을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로 이용되어 왔다. 차령고개를 넘어서면 공주 땅에 들어선다. 고개를 지나자마자 보이는 넓은 강이 바로 공주강, 지금의 금강이다. 따라서 차령이남과 공주강외는 옛날 백제땅이 시작되는 경계였다. 그렇다면 훈요십조에서 지목한 금강은 어떻게 배역한다는 뜻일까. 2. 고려시대의 비보풍수 호남 제일의 풍수를 지녔다는 조계산, 그 중에서도 가장 좋다는 곳을 골라 선암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 절은 풍수적으로 보기 드물게 중후하면서도 안정된 곳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명당에도 치명적인 흠이 있다. 절터에서 뻗어 내려오는 양쪽 산줄기가 다물어지지 않고 벌어져 그 사이로 좋은 기가 다 빠져 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흠을 보완하여 좋게 고쳐서 쓰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비보풍수이다. 고려시대에는 나쁜 땅이라고 버리고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땅으로 고쳐서 쓰려는 사상인 비보풍수가 일반적이었다. 3. 왕건과 호남지역의 관계 왕건에게 호남 세력을 차별할 만한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을까. 신라말, 조선 초 한국 불교와 정치 사상을 이끌었던 도선은 당시 왕실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또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통치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런데 훈요십조의 내용대로라면 도선은 배역의 땅에서 나온 인물이 된다. 4. 훈요십조, 과연 지켜졌나? 왕건은 다른 지역과 차별 없이 호남지역 사람들을 등용했고 측근에 두고 신임했다. 그리고 왕건이 나라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호남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훈요십조의 제8조항을 왕건 스스로가 지키지 않은 셈이다. 훈요십조는 '중심장지'로 끝을 맺는다. ‘중심장지’란 말 그대로 마음 속에 깊이 새겨서 따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후대 왕들은 과연 훈요십조의 조항을 잘 지켰을까. 5. 사라진 훈요십조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10가지 가르침! 그 가운데 가장 핵심은 8조항, 배반의 땅인 호남지역 사람에게는 벼슬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훈요십조가 기록되었을 왕실 자료는 1010년 거란의 침입으로 모두 불타버렸다. 훈요십조의 모든 내용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따라서 왕건이 남긴 훈요십조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는 없다. 여기에 역사의 비밀이 숨어있었다. 6. 훈요십조의 조작 의혹 현종때 고려 역사가 재편찬 되면서 사라진 훈요십조가 발견되었다. 불에 타서 사라져 버린 훈요십조가 태조실록을 재편찬하는 시기에 딱 맞춰서 나타난 것이다. 먼저 훈요십조가 처음 발견된 때인 현종의 시대로 돌아가 본다. 7. 훈요십조의 조작 시기 현종을 왕위에 옹립 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신라계 출신들이었다. 훈요십조를 발견한 인물도 신라 혈통의 경주 출신이었다. 그렇다면 현종과 그의 측근들이 훈요십조를 조작한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