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야
2013. 2. 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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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사 남명 조식의 산수유람 남명이 남긴 지리산 기행문, 유두류록에는 그가 산행에서 들린 곳, 느낀 감정 등이 소상하게 적혀있다. 남명은 등반을 통해 주변지역을 차근차근 거쳐가며 산수와 더불어 그 속에 사는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았다. 그것을 통해 남명은 역사를 새롭게 보았던 것이다. 2. 학자가 늘 지녔던 칼의 의미는? 남명의 초상화를 보면, 허리춤에 방울이 두 개 달려 있다. 남명의 방울에는 성성자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성자가 깨어있다는 의미로 늘 깨어있는 정신상태를 말한다. 남명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나는 방울 소리를 들으며 늘 자신을 반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남명에게는 성성자 외에 몸 가까이에 둔 물건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칼이다. 남명은 그 칼을 몸에서 잠시도 떼지 않았다고 한다. 남명에게 칼은 어떤 의미였을까. 3. 청학동은 어디인가. 지리산을 찾는 선비들은 반드시 청학동을 찾았다. 남명 역시 청학동을 찾아나섰다. 그곳은 어디일까. 현재 청학동은 하동군의 학동마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각종 문헌에서 청학동은 달리 묘사되고 있다. 청학동은 험난한 시대에 지인들이 찾아 나선 일종의 유토피아였다. 4. 500년 전의 산행 지리산의 절과 암자가 400여 개에 이르고 보니 산 속 지리에 해박한 스님들은 산행에 꼭 필요한 존재였다. 오늘날로 보면 절은 산장, 스님은 산행 가이드인 셈이다. 16세기, 선비들의 산수유람은 일정한 경향을 가지고 이루어졌는데 특히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유람의 과정을 중요시했다. 5. 삶의 스승 지리산 남명의 사상과 학문은 하나의 학파로 정립됐고 수많은 후학이 뒤따랐다. 그는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였다. 그러나 끝내 벼슬길을 거부하고 한 사람의 처사로 기억되고 싶었던 그에게 지리산은 그 정신을 잃지 않고 정진할 수 있도록 말 없이 이끌어준 스승과 같은 존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