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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왜 3일간 서울에서 머물렀나?

천지인야 2013. 2. 7. 23:03

   
 
한국전쟁 최대 미스터리 - 북한군, 왜 3일간 서울에서 머물렀나?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적으로 공격을 시작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기 시작해 단 3일만에 남한의 심장부인 서울을 점령했다. 그러나 북한군은 갑자기 서울에서 진격을 멈춘다. 세계 어느 나라 전쟁에서도 초기에 진격을 멈추는 예는 없었다고 할 만큼, 전쟁초기에 상대방에게 시간을 준다는 것은 군 전략상 아주 치명적인 것이라고 한다.
 
     세부설명
  1. 문제의 3일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이에 비해 한국군은 방어능력
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뒤 곧바로 한강을 건넜다면 전황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북한군이 서울에 머물러있는 3일 동안 한국군은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고, 미군이 긴급 투입되었다. 때문에 김일성은 서울에서 머문 이 3일을 전쟁을 실패요인으로 지적했다.


2. 북한군, 도하하려면 할 수 있었다.

당시 서울은 미아리 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국군이 인도교를 폭파한 상태였다. 하지만 북한군은 경부철교나 나루터를 이용해 강을 건널 수도 있었다. 때문에 비록 다리가 폭파되고 특별한 도하장비가 없었어도 북한군이 강을 건널 의지만 있었다면 28일 서울 점령 직후에도 충분히 가능했다.


3. 서울 제한점령론?

북한군이 서울만 점령하면 남한 내 남로당이 봉기를 해서 군사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남한을 점령할 수 있다는 서울 제한점령론. 이에 따라 북한군은 서울에서 3일간 기다리지만, 봉기가 일어나지 않고 더욱이 미군이 예상보다 빨리 개입하게 되자 작전을 바꿔 남하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한때 학계에서 자주 거론되었다.


4. 북한군의 원래 계획

다리 폭파로 강을 건널 수 없었던 것도 아니고, 김일성과 스탈린이 서울만 제한점령 하려 했던 것도 아니라면 과연 북한군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전쟁직전에 만들어진 북한의 남침작전지도에 북한군의 원래 의도가 들어있었다.


5. 춘천전투

북한군 작전의 핵심은 1단계 작전에 있다. 북한군 주공부대가 서울을 점령하여 한국군을 강 이남으로 밀어내면, 춘천을 점령한 북한군 조공부대가 수원으로 내려와 강 이남으로 내려온 한국군을 포위해서 섬멸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춘천을 점령한 후 수원으로 내려와야했던 북한군에게 문제가 생겼다. 춘천을 하루 만에 점령한다는 계획이 무너진 것이다.


6. 말고개 전투

춘천에서 작전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 홍천으로 진격해 가던 북한군의 12사단 중 2개 연대를 춘천으로 급히 보낼 정도로 북한군의 상황은 급박했다. 하지만 설사 춘천지역에 문제가 생겼더라도 북한군 12사단이 계획대로 홍천을 점령했다면 춘천을 방어하던 국군의 6사단에게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북한군 12사단 역시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7. 춘천전투, 그 이후

춘천-홍천 지역에서의 전투가 끝난 뒤 곧바로 북한군과 소련고문단은 북한군조직의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한다. 춘천, 홍천 점령의 총책이라고 할 수 있는 2군단장을 교체하고 2사단장도 해임한다. 이외에도 2사단과 12사단의 책임자들을 일제히 바꾼다. 그리고 북한의 남한점령계획은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