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마골 이야기
(출처: http://cafe.naver.com/tthumb/3692)
태조대왕의 한양천도 후 한양은 나라의 중심이 됩니다.
태조는 한양을 둘러싼 성곽인 한양도성을 축조하고 그 중심에 주된 궁궐인 경복궁을 세웠습니다.
경복궁이 백악아래 자리함으로써 그 앞에 육조거리, 즉 지금의 세종로가 들어서게 되고
육조거리와 직각하여 흥인지문까지 이어지는 운종가(지금의 종로거리)가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 한양도성 (출처: http://blog.naver.com/huhuniniya/140154730640)
운종가는 한양 도성 안에서 제일 큰 길로 유동인구가 많았는데
하필 운종가와 맞닿아 있는 길이 육조거리(현재의 세종로)여서 이곳을 오가는 백성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육조거리는 주궁인 경복궁으로 가는 길목이다보니
많은 관료들이 이 길을 이용하기 마련이고, 높은 관직의 관료가 지나갈 때는
보통의 백성들은 매번 머리를 조아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머리를 굽히려니 귀찮고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하니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을테지요?
그래서 비록 좁은 길이지만 대감나리들의 행차에 상관 없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길이 필요했고 자연스레 종로통 큰 길 뒤로 자그마한 골목이 생겼습니다.
이 길의 이름은 '피마골'. 말을 피하기 위해 만든 골목길이라는 뜻으로, 원래는 '피마길'이던 것이
현재는 식당과 술집이 많이 들어서고 이름도 조금 바뀌어 '피맛골'이라고 한다.
(출처: http://blog.naver.com/hanilcap/40092965524)
고관대작의 말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피맛골은 그 존재 자체가 평민을 위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피맛골은 당시 평민들의 넉넉지 못한 생활상을 그대로 나타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중심대로와 나란히 늘어선 으슥하고 좁은 길에는 서민들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술집과 음식점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피마골을 대표했던 곳은 ‘목로주점’으로 술 한잔 금방 하고 떠나는 곳이기에
손님들이 서서 술을 마시는 것이 특징입니다.
흔히 '선술집'이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또 피맛골에는 특히 장국밥집과 국수집이 많았습니다.
장국밥집은 문 밖에 울긋불긋한 등을 달고 국수집을 백지를 찢어 늘어뜨려 놓는 것으로 식당의 메뉴를 표시했다고 하니
재미있습니다.
▲피맛골 청진옥의 해장국
(출처: http://blog.naver.com/lipidcho/120147254883)
피맛골을 대표하는 음식에는 해장국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양도성이 막 사대문을 열면 일꾼들이 온갖 물건들을 수레나 지게에 지고 육의전 어귀로로 들여왔는데,
일꾼들은 새벽부터 일을 하고난 뒤에는 피맛골의 뜨끈한 해장국에 한 술씩 밥을 말아서 먹었다고 합니다.
이후 18세기 들어 상공업이 발달하고 전국적인 역마 시스템과 객줏집이 번성하면서
해장국은 조선 제일의 패스트푸드로 자리를 굳히게 되다고 합니다.
지금은 피맛골의 터줏대감과도 같은 가게들이 새 건물로 들어가 예전의 정겨운 모습은 사라졌지만
현대화된 건물에 들어갔다고 그리운 그 맛까지 변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모습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서민을 위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하니
종로에 갈 일이 있다면 한번쯤 피맛골을 들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출처: 한양도성문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