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연지곤지

천지인야 2013. 9. 9. 10:51

고려 후기에 우리나라가 한때 몽골의 사위 나라가 된 적이 있었다. 몽골은 우리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우리나라의 왕을 의무적으로 원나라 왕녀와 혼인을 시켰는데 충렬왕때부터 공민왕때까지 7명의 원나라 왕녀가 고려 왕에게 시집을 왔다. 그들이 시집올때 몽골사람을 하인으로 데려와 그들이 언어와 풍습이 고려의 궁중과 상류사회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족두리
족두리 족두리는 원나라에서 왕비에게 준 고고리가 와전된 것으로 보이는 말로, 몽골에서 족두리는 결혼한 여자가 나들이할 때 쓰는 모자였다.
고려 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로 모양이 작아져서 머리 장식품으로 변하였다. 영조 임금때 가발이 비싸서 가발을 못 쓰게해서 왕비나 세자빈이 족두리를 쓰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쓰게 되었는데 궁중이나 양반집에서 혼례복에 족두리를 썼다. 족두리를 너무 예쁘게 꾸미면 많은 돈이 들어가므로 사치를 막기 위하여 족두리는 모두 흑색으로 하고 장식을 많이 하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족두리는 부녀자가 의식때 예복을 갖추어 병용하던 것으로서 조선조 중후기의 가체(加痂)금지령이후 화관과 함께 쪽머리에 쓴 것이다. 그 후부터 궁중이나 반가에서는 소례복이나 원삼에 족두리를 쓰고 평민은 혼례때 원삼에 병용하였다.

족두리는 일명 족아(簇兒), 족관(簇冠)이라고도 하였는데 검은 비단으로 만들어 아래는 둥글고 위는 여섯 모로 되었으며 솜이 들어 있고 그 가운데를 비게 하여 머리에 쓰게 한 것으로 장식이 없는 '민족두리', 산호주(珊瑚珠), 밀화구슬, 진주를 꿰어 만든 '꾸민족두리'가 있다.

곤지곤지
연지는 볼과 입술을 붉은 빛으로 치장하는 화장품이다.
이마에 둥그렇게 치레하는 곤지도 이 연지를 쓴다.
이 연지 치레는 몽골의 침략기에 본격적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아기의 재롱거리로 '곤지곤지'하며 손가락끝으로 볼을 찌르는 모습은 예뻐보이라는 연지·곤지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 인류 최초의 화장품 연지

잇꽃,홍화 잇꽃(홍람(紅藍)·홍화(紅花)·이꽃·잇나물이라고도 한다)의 꽃잎에는 카타르몬(Carthamin)이라는 물에 녹지 않는 빨간색 색소와 사프란 옐로우(Saffron yellow)라는 물에 잘 녹는 노란색 색소가 있다. 잇꽃을 물에 담가서 노란색 색소를 빼내고 빨간색 색소만을 뽑아 낸 것을 연지(燕脂)라고 하는데, 연지는 옛날 중국 은나라 주왕의 왕비로 요염하고 음탕하기로 이름났던 달기가 처음 만들었다고 하며, 연(燕)나라에서 그 원료를 가져 왔다 하여 '연지'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연지는 한나라 때 궁녀들이 월경이 있을 때 얼굴에 발라 표시를 하던 것이 차차 화장품으로 발달하여 볼, 입술, 손톱 등에 바르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는 결혼식때 새색시 얼굴에 연지곤지를 찍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신부의 얼굴을 더 곱게 보이게도 하였거니와, 붉은색이 악마를 막아 준다는 주술적인 뜻도 함께 있었다. 아마 연지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화장품의 하나일 것이다.

연지는 오래가도 색이 변하지 않고 독이 없으며, 향기가 오래 지속되는 특성이 있어서 입술에 바르는 루즈 원료나 과자, 떡, 청량음료를 착색하는 데 널리 썼다. 서화용 물감으로도 썼고, 그릇을 물들이는 데도 썼으며, 은물에 연지를 덧칠하면 금빛이 나오므로 금박 대용으로도 요긴하게 쓰였다.

수라
임금의 진지를 가리키는 '수라'는 몽골어의 '술라'에서 온 것으로 보이며,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고려 때 태자들이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다가 돌아와서 왕위에 올랐는데, 이때 들어온 말로 추측된다.

궁 중에서의 일상식이란 평일에 왕ㆍ중전ㆍ대비전ㆍ대왕대비전께 이른 아침 7시 전에 초조반을 드리는데 이것이 죽수라이다. 아침 10시경 비로소 아침 수라를 잡수시고 저녁 5시경에 저녁수라를 잡수시며 이를 수라(水喇)라 지칭하였다. 궁중에서 사용하는 수라라고 하는 말은 원나라의 여인이 고려왕의 왕비가 되면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수라는 그대로 조선조에 이어져 임금의 진지를 뜻하게 되었다.

마누라
마누라는 고려후기에 몽골어에서 들어와 조선시대에 '대비 마노라','대전 마노라'처럼 마마와 같이 쓰이던 극존칭어이다.

이것은 원래 주상(主上)이나 상전(上典)의 뜻으로 쓰이다가 18세기부터 '처'의 뜻으로 쓰인 '마노라'가 변한 말이다.
① 마노라(上典)<삼강, 忠 18>
② 마노라(主上)<閑中 p.230>
③ 마노라(太太)<譯補 補 18>
①의 마노라는 '상전'을, ②의 마노라는 '주상'을 ,③의 마노라는 '처, 부인'을 뜻한다.

신분제도가 무너진 조선후기에는 늙은 부인이나 아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다가 오늘날에는 아내를 허물없이 부를때나 다른 사람에게 아내를 낮추어 일컫을때 쓴다.

보라
담홍색을 나타내는 보라색의 어원 또한 몽골어에서 왔다.
몽골의 지배를 받던 고려시대에 몽골의 풍습가운데 하나인 매사냥이 성행하면서 사냥을 잘하는 새로 널리 알려진 것이 송골매라 불리는 해동청과 보라매였다. 이 보라매는 앞가슴에 난 털이 담홍색이라서 붙은 이름으로, 몽골어 '보로'에서 온 말이다.

설렁탕
고기를 맹물에 끓이는 몽골요리인 '슈루'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고기 삶은 물인 공탕(空湯)을 청나라에서는 '실러', 몽골에서는 '슐루'라고 하는데 이 '실러','슐루'가 '설렁탕'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