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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차등 주거지

천지인야 2013. 9. 9. 10:54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신분에 따라 사는 지역이 달랐다.
특히 천민들은 향(鄕)·소(所)·부곡(部曲)이라는 특정 지역에서만 살아야 했다.

이 가운데 '향'은 신라시대에 생긴 것으로, 호족의 지배를 받던 곳이나 전쟁 포로 또는 반란을 꾀한 역적의 가족이 살던 지역을 말한다.

'부곡'은 천민들로 하여금 농기구·병기·유기 따위를 생산하게 하던 특수 행정구역이었다. 이들 부곡민은 천민이었지만 매매나 양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노비보다 신분적인 지위가 높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주거나 생활에 제약이 많은 점에서는 노비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부곡은 대가족이 단혼가족으로 변하고 갖가지 차별에 대항하는 반란 등이 자주 일어나면서 행정 구획의 개편에 따라 점점 사라져 갔다.

소는 고려시대때 생겼다.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금·은·동·철·실·종이·도자기·먹 등 수공업품을 만드는 장인이 거주하는 지역을 말한다.
소는 무엇을 만드는가에 따라 금소·은소·동소·철소·사소·지소·자기소·묵소 등으로 나뉘었는데, 여기서 일하는 장인도 대개는 죄인이나 천민이었다고 한다.
왕이 소속 주.군.현을 통해 직접 관리하면서 공물 등을 지나치게 걷어들였기 때문에 소에서도 반란이 자주 일어났다.
그래서 소도 12세기이후부터 쇠퇴해 가다가 15세기 후반에는 군.현으로 승격하거나 소속 군현에 흡수되어 완전히 사라졌다.
예를 들면 고려 명종때 공주 명학소에서 천민인 망이·망소이가 난을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이들을 억누른 정부는 천민들이 다시 말썽을 피울까 두려워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시켰다 한다. 하지만 몇달 안되어 이곳에서 또 난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러자 정부는 충순현을 다시 명학소로 바꾸어 버렸다.

이처럼 신라시대부터 생겨난 향·소·부곡은 고려시대에 한동안 번성하기도 했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는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옛날에는 한양에서도 계층에 따라 사는 지역이 각각 달랐다고 한다.
그래서 문관은 동쪽에 거주하여 동반이라 하고,
무관은 서쪽에 거주하여 서반이라 했다.
기술직 관리는 한양의 중앙부에 거주하여 중인이요,
궁중의 잡직은 남쪽에 거주하여 남반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