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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발굴, 나주 아파트고분의 미스터리

천지인야 2013. 2. 7. 14:48

   
 
최초발굴, 나주 아파트고분의 미스터리
남도의 젖줄인 영산강과 그 주변의 기름진 들녘, 나주평야.
이 일대에는 5-600기의 고분들이 즐비해 있다. 고분은 대부분 고대 부족사회 지배자 한 사람의 무덤이다. 그런데, 나주 복암리 3호분은 3세기 말에서 7세기 초 즉, 400여 년에 걸쳐 조성되었다. 서로 다른 무덤의 형태가 7가지, 매장 시설은 총 41기의 사상 유례 없는 최초의 아파트형 고분이다.
 
     세부설명
  1. 고분도 아파트형이 있다!- 나주 복암리 3호분

고분은 대개 지배자 한 사람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각기 다른 무덤 형태가 7가지, 매장 시설은 총 41기의 사상 유례 없는 최초의 아파트형 고분이 나주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아파트형 고분의 미스터리를 밝혀본다.


2. 400여 년에 걸친 고분 형성

나주 아파트 고분은 4백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3층짜리 고분이다. 그렇다면 시기별로 달리 나타나는 고대의 매장풍습은 어떠했을까. 몇 기의 무덤에서는 인골도 발굴되었다. 그렇다면 오랜 세월 한 봉분에 계속해서 무덤을 썼던 이들은 어떤 관계였을까.


3. 영산강 지역의 과거를 찾아서

옹관이란 항아리처럼 생긴 관을 말한다. 옹관묘는 기원전부터 이 땅에서 사용된 고대 무덤 양식 가운데 하나인데, 황해도 일부와 경기 이남 전 지역에서 해안을 따라 고루 분포해 있다. 하지만 영산강 유역이 유독 눈에 띄는 이유는 이곳에서 옹관들이 무수히 발견되었고 매장 풍습도 다른 곳과 좀 다르기 때문이다.


4. 백제에 버금가는 마한 사회. 그 힘의 원동력은?

고고학계에서는 영산강 유역의 마한사회를 ‘옹관묘 세력’으로 칭하기도 한다. 대형 옹관 고분의 하나인 나주 신촌리 9호분. 이곳에서는 금동관을 비롯한 수장의 위세품들이 다량 출토되었다. 이들 유물을 보면 당시 세력의 크기는 백제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그 힘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5. 고분 속의 금동신발

아파트고분에서 발견된 청동에 금을 입힌 금동신은 왕이나 그에 버금가는 세력가를 상징하는 유물이다. 그런데 이 금동신이 주목 받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금동신을 통해서 고대 영산강 유역의 문화수준을 단적으로 파악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금동신의 표면 흙과 녹을 제거해 나가다 보면 신라와 백제의 문화와는 다른 정교하고 화려한 옹관묘 세력의 문화가 드러난다.


6. 물고기무늬의 비밀

한 금동신의 물고기 장식은 마치 살아 꿈틀대는 듯 하다. 그런데 다른 금동신에서는 이 독창적인 물고기가 전혀 없다. 권력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물고기 문양. 고대 중국에서는 쌍어문이라고 해서 물고기 두 마리를 지배층의 무덤에 새겼다고 한다. 이 물고기가 달린 금동신이 몇 해 전에 해외에서 출토된 적이 있다. 바로 이웃한 일본이다. 나주의 금동신에서 발견되었던 물고기 무늬와 비슷한 무늬가 일본 나라현의 후지노끼 고분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7. 마한의 마지막 - 백제로의 복속

해상의 요충지이자 비옥한 곡창 지대였던 영산강 유역은 마한의 마지막 근거지였다. 백제는 이렇게 유리한 마한의 땅을 욕심 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산강 유역은 언제 백제에 복속되었을까. 아파트고분은 마한 최후의 모습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