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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천년 왕국이 있었다

천지인야 2013. 2. 7. 14:50

 
   
 
제주에 천년 왕국이 있었다
고씨, 양씨, 부씨 성을 가진 세 성인이 삼성혈의 세 구멍에서 솟아 나와 세운 나라가 탐라국이라는 개국 신화가 전해지는 제주도. 최근 제주도에 탐라국의 유적지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신화로만 알려져 온 탐라국의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세부설명
  1. 탐라국의 실체가 있다

1996년 제주시에서 토지구획사업을 실시하던 중 드러난 제주도 삼양동 마을유적에서 대규모의 집자리와 각종 시설,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곳에서 발견된 거주지만 250여 개, 시설물도 제법 규모 있게 갖춰 있었다. 이 발견은 제주도가 낙후된 문화생활을 영위했을 거라는 그 동안의 추측을 깨고 오히려 육지보다 선진적인 문화를 가졌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2. 일찍부터 한반도와 밀접한 교류를 하고 있었다.

제주도의 삼양동 마을 유적은 지난 1974년 발굴된 충남 부여 송국리의 마을 유적과 형태가 비슷하다. 또한 제주지역의 토기 역시 전남 해남 군곡리 일대에서 유행하던 토기와 비슷했다. 이는 제주도가 철기시대부터 열린 바닷길을 통해 한반도 전역의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3. 선진적인 철기문화의 소유

철이 생산되지 않는 제주에서 철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이로써 일찍이 2세기경 제주도에 철기문명이 들어서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또 탐라가 현지발생적 문명이 아니라 북쪽에서 유입된 민족이 새로이 세운 나라라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4. 원거리 교역과 중개 무역을 통한 부의 축적

탐라국의 교류는 한반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제주도의 위치는 북쪽으로 한반도, 서쪽으로 중국, 동쪽으로 일본, 남쪽으로는 대문과 일본 오끼나와 열도가 있다. 다시 말해 제주도는 동아시아의 정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점을 이용, 중개무역을 통해 탐라국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당당한 해양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5. 교역의 필수품, 탐라의 배

섬나라 교역의 필수품은 단연 배인데 그 중에도 탐라의 배는 독특했다. 덕판배라고 불리는 제주 전통배는 뱃머리에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 덧붙였는데 이는 제주 해안을 드나들 때 암초에 부딪혀 뱃머리가 잘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덕판배는 작은 탐라가 강대국들과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디딤돌 같은 것이었다.


6. 탐라국의 외교관계

삼국통일 전까지 탐라국은 백제와 우호 관계를 맺는다. 한편 신라와는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는데 이는 경주황룡사 9층 탑으로 알 수 있다. 이 탑의 각 층은 신라가 경계해야 할 9개의 적을 상징하는데 그 중 4층이 탐라를 의미한다. 탐라국은 소구의 필수인 탁월한 외교력도 겸비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