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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 수나라 전쟁

천지인야 2013. 2. 7. 15:05

 
 
철저 분석, 고구려 - 수나라 전쟁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기 때에 백만 대군으로 남쪽으로는 오, 월을 침범하고 북쪽으로는 유, 연, 제, 노나라를 뒤흔들어서 오랫동안 중국을 핍박했다. 수나라가 멸망한 것도 바로 그런 고구려의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 삼국사기
400년 간 계속되던 분열과 혼란시대의 막을 내리고 중국 땅에 들어선 통일왕조 수나라. 수나라는 고구려와 16년에 걸쳐 4번의 전쟁을 치렀다.
 
     세부설명
  1. 죽어서도 하늘의 벌을 받았다는 왕 수양제

후대 사람들은 중국 수나라의 두번째 왕이자 마지막 왕인 양광을 수양제라는 시호로 불렀다. ‘양제’라는 말에는 하늘을 거역하고 백성을 학대했다는 뜻이 담겨있다. 이 수양제가 세 차례에 걸쳐 고구려와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현재 남아있는 수양제의 무덤은 황제의 무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초라하다.


2. 고구려 - 또 다른 천하의 중심

수나라는 통일 후 주변의 이민족들을 차례로 정복해 나간다. 중국이 천하의 중심을 이루어야 한다며 다른 민족들을 자신 앞에 고개를 숙이게 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동쪽에 있는 또 다른 천하의 중심, 고구려가 있는 한 중국의 천하는 서방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3. 경제강국 고구려

북방의 이민족, 중국, 한반도, 일본 그리고 중앙아시아 상인들까지 대거 모여들었던 중국 요서지방의 조양(영주)시는 6세기 말 고구려의 세력권이었다. 당시 고구려는 이 노른자 땅을 바탕으로 하여 중개 무역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해상무역도 활발했다. 이 모든 것은 군사 대국 고구려의 숨겨진 면모 즉, 경제대국 고구려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4. 수양제의 고구려 정벌

문명대전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던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은 두 나라의 자존심을 건 양보할 수 없는 전쟁으로 굳혀져 간다. 수양제는 고구려정벌을 앞두고 만리장성을 보수하는 대공사를 벌인다. 이 공사에 동원된 장정만도 백만 명에 이르렀다. 또한, 대대적인 신무기 개발을 명령하고, 거대한 군함을 건조하는 등 만반의 전쟁준비를 마친 수양제는 고구려 정벌에 나선다.


5. 고구려의 선제 공격

고구려는 자신만만했다. 수나라의 영주지방을 선제공격하면서 수나라의 전력을 슬쩍 떠보기도 한다. 고구려 자신감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 해답은 전운이 감도는 고구려의 땅 중국 요령성에 위치한 백암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6. 두 천하의 자존심 살수대첩

고구려와 수나라는 16년 동안 모두 네 번의 전쟁을 치뤘지만 현재 기록으로 남아 있는 전쟁은 살수대첩뿐이다. 두 천하가 맞붙었던 일전. 중국역사는 살수에서의 수나라 참패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요동을 건너간 군사는 모두 30만 5천명. 그러나 돌아온 군사는 오직 2천 7백 명뿐이었다.’


7. 16년 전쟁의 끝- 수나라의 운명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무참히 패한 후, 수나라에서는 전쟁을 반대하는 가요가 유행했다고 한다. ‘관군이 창검으로 고구려를 친다하네, 허나 요동에 가면 오직 죽음뿐 온몸이 찔리고 머리가 잘릴 것을…’ 그리고 수나라 이후 중국 통일왕조로 들어선 당나라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국서 한 장을 고구려에 보낸다. ‘각자의 영토를 잘 보전하며 서로 화복하게 지내니 다행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