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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반도 크기의 산맥을 고구려인들은 어떻게 넘었을까? 고구려가 지두우까지 진출했는지의 여부를 알기 위해 고구려의 첫 수도 환인을 찾았다. 인구 30만의 자그마한 도시 중국 환인. 이곳에서 고구려는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 2. 부여정벌과 북진정책 건국신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구려는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이다. 이후 고구려는 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건국초기부터 무려 500년 동안 계속 부여정벌을 시도한다. 고구려의 북쪽 부여 정벌. 결국 부여 정벌은 고구려의 북진을 의미했다. 3. 렐리제프 보고서 - 내몽골에는 고구려 성이 많다. 러시아의 고고학자 랠리제프의 보고서에는 놀라운 사실이 적혀있다. 내몽골지역에 고구려성이 많다는 것이다. 일단 성이 있는 마을로 향했다. 언뜻 보기에도 성은 거대해 보였지만, 성벽의 형태만으로는 고구려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4. 난공불락의 요새 고구려 성 원래 유목 민족들은 산성을 쌓지 않는다. 몽골지역에 있는 여러 개의 천연절벽을 이용한 산성, 그것은 고구려를 꼭 닮았다. 중국 기록에서도 고구려를 성의 나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고구려의 성은 독특한 방어시설을 갖추고 있어 적들의 공격을 굳건히 막아내곤 했다. 5. 고구려가 지두우를 차지한 진짜 이유 고구려는 정상부분이 거대한 평원처럼 펼쳐지는 대흥안령산맥을 넘어 유목 국가인 지두우에 진출한다. 지두우의 정복은 단순히 영역을 넓히려는 목적을 넘어 국제적 무역의 길목을 장악함으로써 경제적 이익까지 누리려는 광개토대왕의 거시적 안목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6.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네트워크 조성 광개토대왕의 영역정복의 루트를 따라 가다 보면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사통팔달의 무역 망이 그려진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하나씩 정복해서 결국 국제적 무역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누리게 되었으며, 이후 150년 간 전쟁 한 번 없이 태평성대를 누리게 된다. 광개토대왕은 국력을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지배자였고 치밀한 전략가였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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