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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풍납토성의 말의 뼈 유물 풍납토성 성벽 내 한 아파트 공사현장. 이곳에서 이제까지 발굴이 흔치 않았던 백제초기의 유물과 유적들이 다량으로 발굴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가장 이목을 끈 것은 10마리 가량의 말 뼈였다. 그 당시 가장 귀하게 여겨지던 말의 뼈가 10구나 발견된 이곳은 과연 어떤 유적지일까. 2. 토기에 새겨진 대부 발견된 유물 중 당시로서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토기가 발견되었는데 그 유물에는 대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백제에는 대부가 없다. 그것은 고구려나 신라, 중국에서 쓰던 관직의 명칭이었다. 이 백제토기편의 발견은 기록에서 누락된 백제의 실체에 한발 더 다가가는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 3. 백제초기의 모습 재현 지난 1997년 풍납동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백제의 유물은 이제까지 좀처럼 발굴 할 수 없었던 백제초기의 유물이었다. 그 중에 기와의 발견이 가장 학계의 관심을 끌었는데 그 문양으로 보아 불교가 들어오기 전의 백제초기의 기와였기 때문이다. 당시 기와는 오직 왕궁과 관청, 절에서만 사용되는 것이었다. 이는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중심성이었음을 말해준다. 4. 왜 석성이 아니라 토성일까? 풍납토성은 석성이 아니라 토성으로 지어졌는데 그 의문에 대한 단서는 중국에 있다. 중국의 축성술이 백제에 그대로 전해진 것이다. 중국 하북성에는 기원전 3세기 무렵 지어진 연나라 토성이 비교적 잘 남아있는데 풍납토성의 건축술에서도 이와 같이 흙을 한 층씩 다져나간 판축기법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5. 풍납토성, 비밀을 벗다. 유적지와 유물을 통해 복원해 본 풍납토성의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규모였기 때문이다. 이런 규모로 성을 지으려면 105만 명의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고 이는 백제가 초기에 변변한 성곽조차 없었다는 기록을 뒤엎고 강력한 고대 국가였음을 증명해준다. 숨겨졌던 풍납토성 유적지의 발굴은 한국초기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온 것이다. 6. 지하 4m의 비밀 고구려에 의해 폐허가 된 채 버려졌던 위례성. 이번에 발굴된 유적들은 지한 4미터의 땅 속에 있었다. 한때는 분명히 한 도시의 번성했던 도읍지로 사람들이 붐볐을 지표면이 어떻게 지하 4미터의 땅속에 묻히게 된 것일까. 1500년 동안 백제의 초기역사가 완전히 잊혀졌던 이유는 한강으로 인해 쌓인 4미터 높이의 퇴적층에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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