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文話/♧ 月香

저녁에/김광섭

천지인야 2016. 7. 8. 11:09

이쁜별이미지4장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 1913~1974)

우리나라 모더니즘의 1세대로서 한국적인 정서에 서양화의 화법을 도입하여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한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김광섭의 시에서처럼, 무수히 많은 점들로 이루어진 이 그림에서 김환기는 그리움을 노래한다.

먹물이 화선지 위에 번지듯 목면의 화폭 위에 저 스스로 번져나간 푸른 점 하나마다 우리의 인연 하나씩이 담겨 있다.

이미 만나서 그리움이 되어버린 인연, 아직 만나지 못한, 그래서 만나야 할 인연

그리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지도 모를 무수한 인연들...

멀리 바다 건너 뉴욕에서 노년의 화가는 그 인연들에 대한 모든 그리운 마음을  담아

한 점, 한 점을 드넓은 화폭 위에 찍어냈을 것이다.

끝없이 점을 찍어가며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과 고국의 밤하늘, 별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렇게, 그의 마음 하나가 푸른 점 하나가 되었고, 그것이 모여 수천 개의 점들이 되고 한 폭의 커다란 그리움이 되었다.

그리고 커다란 화면 안에 가득 담긴 그리움의 노래는 김광섭의 시에 담긴 함축과 여운을 고스란히 담아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때로는 우리의 얼굴마저도 울린다.

김환기가 살아 생전에 말한 '울리는 미술'이 이런 것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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