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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왜구는 정예부대였다

천지인야 2013. 2. 7. 22:26

고려 말 왜구는 정예부대였다
1352년, 고려의 수도 개경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백성들의 통행이 통제되었고, 궁궐을 지키는 병사들에게는 급박한 경계령이 내려졌다. 내란도 아니었고, 전쟁도 나지 않았던 평화시에 고려의 수도 개경에 내려진 계엄령. 계엄령이 발령되게 만든 장본인은 왜구였다. 평화롭던 개성에 계엄령이 발령되도록 만들었던 의문의 집단, 왜구. 고려 말 왜구의 실체를 밝힌다.
 
     세부설명
  1. 기록 속의 왜구

왜구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취재진이 처음 찾은 곳은 도쿄. 도쿄대학 사료편찬소에는 왜구와 관련된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철제문을 열고 수장고로 들어가니 안쪽에 삼나무로 만든 상자형태의 방이 나왔다. 그리고 몇 개의 나무상자를 열고 몇 겹의 천을 펼친 후에야 취재진은 그 자료를 볼 수 있었다.


2. 왜구의 전술과 일본 무사

고려말 왜구들은 무역이나 약탈을 위해 고려 뿐 아니라 명나라까지 쳐들어 갔다. 왜구의 지휘관 장수들은 완벽한 무장을 했고, 선박기술과 병력도 단순한 도적떼의 능력이 아니었다. 보병과 기병의 합동전술은 평소에 훈련이 얼마나 치밀했던가를 보여준다.


3. 쌀과 재물을 달라

왜구들은 쌀과 재물을 모아둔 고려의 해안가 조창을 집중공격 한다. 이에 고려는 조창을 내륙으로 옮겼는데, 왜구도 옮겨진 조창을 따라 내륙 깊숙이 까지 침입한다.


4. 돌아오지 않는 새신랑

왜구는 저항하는 아녀자의 팔다리를 자르고 살해할 정도로 잔인했다. 그러나 왜구가 주로 노린 것은 부녀자보다는 젊고 힘센 장정들이었다. 고려사에 의하면 왜구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의 수가 3만여 명에 이른다. 일본으로 잡혀간 장정들은 죽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도 아니었다.


5. 일본에 널린 고려 문화재

왜구의 근거지로 지목되는 대마도에는 고려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또한 대마도 곳곳에는 고려의 문화재들이 수없이 널려있다. 중국도 흉내낼 수 없었던 고려불화는 지금 전 세계에 100여 점이 남아있는데 그 중에 90여 점이 일본에 있다.


6. 왜구의 정체

일본 역사상 최대의 혼란기인 남북조 시대. 혈투에서 패한 후쿠오카 통치자 쇼니는 큐슈에서 세력을 잃게 된다. 쇼니가 재기할 꿈을 다진 곳은 대마도와 바다 건너 고려였다. 취재팀은 이 쇼니와 왜구와의 관계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다.


7. 우리 역사에 끼친 영향

최무선이 화포를 개발한 목적은 왜구 격퇴를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성계는 왜구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며 국민적 영웅이 된다. 또한 조선건국의 결정적 계기였던 위화도 회군의 명분도 왜구였다. 그리고 그눈 왜구토벌 과정에서 민심과 권력을 거머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