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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선의 300년전 한강 겸재 정선의 그림 중 한강상류를 담은 것은 모두 5점이 전해진다. 이 중에서 가장 상류로 추정되는 지역이 녹운탄이다. 강가에 솟아오른 절벽아래 물살이 거센 듯한 강물을 거슬러 오르려는 배에는 사공이 보이고, 절벽 너머 산밑에는 제법 번듯한 기와집이 소나무 사이 두어 채 나타난다. 취재진은 그림 속의 현장을 찾아 나섰다. 2. 겸재 정선 정선은 영조시대에 주로 활동한 사대부 출신의 화가이다. 스무 살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정선은 35세가 되던 해 금강산 여행을 떠나면서 본격적으로 진경 산수화를 완성시켜 나간다. 정선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지 현장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담긴 아름다움 까지도 드러내주고 있다. 겸재 정선의 산수화는 단지 중국중심의 화풍을 우리 것으로 바꾸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과 그것이 주는 감동까지 담아낸 것이다. 겸재의 그림을 진경 산수화, 혹은 실경 산수화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3. 18세기의 한강 나루터 조선후기 최고의 화가 겸재 정선이 완숙의 경지에 이르러 만들어낸 그림들이 바로 한강의 풍광이다. 하지만 정선의 그림 <압구정>과 현재의 압구정 한강 변을 비교해 보면 도저히 같은 장소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지금의 압구정은 거대한 고층 아파트 사이에 파묻혀 알아보기도 힘들고, 각종 개발사업으로 지난 3백년동안 한강은 너무 많이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겸재의 진경 산수화 속에 그려진 18세기의 한강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조선후기에 번성했던 한강 나루터로 향한다. 4. 돛단배 그림에는 지역에 따라 돛이 하나 달린 배와 돛이 두 개 달린 배가 등장한다. 간단하고 쉽게 그려진 듯한 이들 몇 척의 배속에서도 겸재는 많은 이야기를 담아두고 있다. 겸재 정선은 한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렸을뿐만 아니라 각 나루터를 이용하는 돛단배의 상황까지 정확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5. 웅어 이야기 겸재의 그림 중 수많은 고기잡이 배들을 그린 <행호관어>라는 그림이 있다. 행호는 지금의 행주산성 앞 한강을 가리키는 말로, 그 행호에서 고기를 본다는 제목이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물고기와 가장 형태가 비슷한 한강에서 서식하는 물고기를 찾아보니, 어부들이 흔히 갈대고기 위어로 부르던 웅어였다. 하지만 이미 한강에서는 사라져버린 고기인데, 아직도 어부들 사이에서는 잊지 못할 고기로 남아 있다. 초여름, 행주산성 앞 한강을 가득 메우며 밤을 밝히던 웅어잡이 고깃배들. 양천관아에서 행호를 내려다보며 한강의 풍광을 그리던 겸재의 손에 의해 웅어 이야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6. 양천 일대의 한강 경교명승첩의 한강모습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그림이 양천 일대 한강의 모습이다. 당시 중국 사신들 사이에서는 ‘조선에 가서 양천현을 보지 못했다면 조선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얘기가 돌 정도로 양천현은 인기가 좋은 곳이었다. 7. 진경산수화 병자호란으로 삼전도의 치욕을 겪은 후, 조선의 사대부들은 심각한 사상의 변화를 겪게 된다. 명나라의 패망으로 이제 성리학의 정통 계승자는 조선이며, 따라서 조선이 곧 중화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 것에 대한 자각이었다. 겸재의 진경산수화는 이런 배경하에 탄생할 수 있었고 겸재는 무려 200여 점의 진경산수화를 통해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우리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18세기 문예부흥의 진경시대는 그 절정기를 맞이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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