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學習/♧ Simple♤ Life

풍물놀이

천지인야 2013. 9. 9. 16:53



풍물ㆍ사물놀이
 
풍물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많은 부분을 같이(포괄적으로) 다루어야 된다. 왜냐하면, 풍물이라는 것이 우리 민중들의 생활, 심성(민족성)을 반영하고 여러가지 다른 요소를 포함(극적요소, 춤,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풍물은 우리 겨레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삶 그 자체였다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음악은 인간의 문화와 역사의 하나로 태어난다. 이 둘과 관계되지 않는 음악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의 하나로 우리음악을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음 현상으로만 이를 파악하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이제까지 모든 음악을 음악형성 과정의 최종단계인 연주행위에 의해서만 이해하려고 배워 왔기 때문이다."
- 우리음악, 그 맛과 소리깔 (신대철 저)

풍물도 우리음악의 범주(악기의 연주 측면만을 바라볼때)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바르게 보지 않고서는 풍물을 바르게 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풍물(우리음악)의 참 맛과 길을 회복함은 단순한 풍물(우리음악)애호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바탕한 잊었던 건전한 민족정신 문제가 담겨져 있다. 잊었던 민족정신을 풍물(우리음악)을 통해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풍물을 이해한다라고 한다면 우리민족의 문화와 역사와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점 등을 두루 이해해야 조금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870년대까지 판소리 춘향가에는 '두레굿'이라 쓰였는데, 일본제국주의의 농업 수탈정책의 하나인 농업장려운동으로 원각사의 협률사라는 단체에서 '농악(農樂)'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인 기록은 일제식민지시대에 대부분 소실되고 변조되었다.)
농악이 글로 처음 나타난 것은 1936년 총독부에서 펴낸 '부락제(部落祭)'라는 책에서였다. 따라서 농악이라는 말은 일제시대 때 일본학자들에 의해 생긴 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농악이란 말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농민(농사꾼)의 음악'으로 여겨질 수 있다. 원래 풍물굿이 농경사회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농민들 스스로 농악이라고 불렀던 적은 없었고 일제의 민족 말살정책의 하나로써 일본의 탈놀이 능악(能樂)의 발음인 '노가꾸'를 본떠서 농악이란 말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일본제국주의는 우리의 민속신앙을 말살(민족정기 말살정책)하고 농업장려의 목적에 한해서만 풍물굿을 허용했다. '농악'이란 이름으로 신청을 해야만 굿판을 열 수 있었기 때문에 굿하는 단체나 마을들이 농악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신청을 한 데서 일반화되다가, 8.15 해방 이후 많은 학자들이 국악이론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농악이라 부르게 되었다.
풍물은 총체적인(종합적이고 대동굿적) 성격을 갖고 있는데 농악이라는 말은 농민의 음악, 즉 장단이나 소리만을 나타내는 단순히 악기를 연주하는 것만으로 한정시켜 버린다. 풍물이 음악적인 요소의 비중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풍물굿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뜻은 놀이, 춤, 재담, 노래, 연극 등이 나뉘어지지 않고 같은 마당에서 함께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또 현재 사회에서도 가능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뜻에서 좀더 적극적인 쓰임말이 필요하다.
풍물굿이 본래 농경사회와 함께 하면서 농경사회의 생활과 노동의 율동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오늘날 서로다른 환경이나 조건 속에 놓여 있는 여러 삶의 터(농촌, 도시, 학교, 노동현장, 어촌 등)에서도 공동체문화 형성에 필요한 매개체로 쓰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쓰임말 자체가 가지는 한계점을 이겨 낼 필요가 있다.

근래에는 사물놀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는 1970년대 말에 "사물놀이패"가 만들어지고 나서 많이 쓰이게 된 용어이다.
사물이란 불교에서의 사물(범종, 운판, 법고, 목어)에서 나왔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풍물굿에 있어서 사물이란 쇠, 징, 장고, 북의 4가지 악기를 말하며 사물놀이란 풍물을 가리킨다기보다는 고도로 무대화된 타악기의 연주형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풍물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풍물을 음악적으로 발전시킨 한 형태인 것이다.
지금 우리는 '사물놀이'라는 말이 마치 우리나라의 전통예술 가운데 꽹과리, 징, 장구, 북을 가지고 뭔가 예술적인 행위를 하는 어떠한 갈래를 일컫는 보통명사로 쓰고 있으나, 사실 사물놀이는 1978년에 생긴 한국전통타악연주 단체(김덕수패 사물놀이)에서 자신들 스스로 붙인 단체의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였던 셈이다. (실제, 70년대 말 김덕수 풍물패가 민속학자 "심우성"씨를 찾아와 자신의 풍물을 어떻게 명칭해야하는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해, 4개의 물건을 가지고 연행을 하니 사물놀이가 적절하겠다는 조언을 주었고, 이후 이것이 고유명사화 되었슴 --- 심우성씨의 TV대담)
그런데 지금은 마치 '사물놀이'가 '풍물놀이'인 양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물놀이가 우리 가락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한 점이나,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고도의 기예를 발전시킨다는 장점도 있으나 풍물이 가지는 총체적이고 대동놀이적인 성격을 소멸시키고 무대화시킴으로서 연희자와 관객을 분리시켜 개인주의적인 문화유통구조를 심화시키는 문제점이 있다.
원래 풍물은 가만히 앉아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연희자와 관객의 구분없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며 또 그래야만 재대로 신명이 나는 풍물판이 형성되는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 우리는 '풍물놀이'와 '사물놀이'를 명확히 구분해야 할 것이다.

풍물은 농사일을 하던 우리네 조상들이 쇠, 징, 장고, 북 4가지 악기를 중심으로 가락을 치며 춤과 함께 노래와 재담, 사설, 재주, 등과 연극적 요소를 담당하는 잡색 등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연희 형태로 발전시킨 것을 말한다. 연희란 연극과 놀이를 포함하는 종합적인 의미이며 연극, 놀이, 음악, 무용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 요소들이 어우러져 이루어지는 것이다.

옛부터 정초에는 동제나 지신밟기를 하며 한해를 시작하였고 농번기에는 일터에서 두레굿을 치었고, 추석을 맞이하여서는 풍물이 전국 방방곳곳을 메아리 치는 가운데 그해의 풍년을 축복하였고, 싸움에 임하여서는 싸움굿으로 줄당기기, 차전놀이 등 대동놀이를 이끌어 대동판을 형성케 하는 역할들을 수행하였다. 이처럼 풍물은 우리의 생활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왔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서구적 예술 구분 방식에 따라 풍물을 몇 가지 타악기로 구성된 음악의 한 장르로 구분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풍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오는 오류이다.

그 외의 명칭

다른 명칭으로는, '매구' '풍장' '두레' '걸립' 등으로 부르고 세분화해서
연주예능으로 보는 경우는 '굿친다' '금고(金鼓)친다' '매구친다' '쇠친다'라 하고
풍물기(器)를 통해 말할 때는 '굿물' '풍물'이라 부르고 있다.
종교적 예능으로 보는 경우에는 '굿' '매굿' '지신(地神)밟기' '마당밟기'라 하며,
노동예능으로 볼 때는 '두레'라 하고,
풍악(風樂)이나 풍류(風流)로 해석하는 경우에는 '풍장'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풍물의 악기가 금속성악기(꽹과리, 징)와 고(鼓:가죽)악기(북, 소고, 장구)로 구성되기 때문에 풍물을 '금고(金鼓)'라 하기도 하고, 일부지방에서는 군악(軍樂)으로 보아 '군고(軍鼓)'라 일컫기도 한다.
이와 같이 풍물은 그 명칭이 다양한 종합적 예능이다.

풍장 농사일에 많이 쓰이는 말로 김매기할 때 이루어지는 풍물놀이를 가르킨다. 특히 만두레(벼농사는 김매기를 보통 세 번 하는데 그 가운데 마지막에 하는 것을 말함)가 끝나는 날 농사가 제일 잘 된 집 머슴을 소등에 태워 위로하며 노는 것을 농장원, 질꼬냉이라고 한다.
두레 원래는 우리나라 고유의 마을단위 일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며, 특히 김매기를 위해서 만들어 졌다. 풍물이 공동체적 놀이로서 일두레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풍물을 두레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굿 모든 지방에 걸쳐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로 '굿친다'라는 표현을 쓴다. 굿의 의미는 원래 '모인다'는 뜻을 갖고 있었다.
모여서 공동체 안의 모든 일을 의논하고 풀어가며, 공동체적 바람을 집단적으로 빌며 집단적 신명으로 끌어올려 새로운 삶의 결의를 다지는 일련의 과정을 담아 내는 말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무속에서의 신앙적 뜻만을 가리키는 흐름이 있다.
매구, 매굿, 매귀(埋鬼) 땅 밑에 있는 나쁜 귀신이 나오지 못하도록 묻고 밟는다는 뜻으로 보통 섣달 그믐날 밤에 하는 풍물놀이를 매굿이라 한다.
주로 경상도 지방에서 풍물을 일컫거나 꽹과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풍물, 풍물굿 주로 경기, 충청도 지방에서 쓰이는 말로 모내기할 때 간단한 편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기도 하며 신에게 소원을 푼다는 뜻이나, 농사의 풍년을 바란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80년대에 들어와서 대학가와 문화모임들이 농악이란 말 대신에 풍물 또는 풍물굿이라는 이름을 많이 쓰게 되었다.






풍물의 이해와 명칭
발달과정 Ⅰ
발달과정 Ⅱ
풍물의 수난과 단절

풍물굿의 구성
지역별 특징

위대한 우리 풍물
가락의 획일화


'♣ 學習 > ♧ Simple♤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쎄시봉  (0) 2019.12.31
산조  (0) 2013.09.09
사물놀이  (0) 2013.09.09
조선후기의 음악  (0) 2013.09.09
조선전기의 음악  (0) 2013.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