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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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2월, 소극장 공간사랑 주최 "제1회 공간 전통음악의 밤"이 개최되었을때에, 4명의 젊은 국악인들의 연주가 소개 되었다. 꽹가리에 김용배, 장고에 김덕수, 북에 최태현, 징에 이종대로 구성된 이들은 "웃다리 풍물-경기 충청가락"을 발표하였다.
첫 공연 2개월 후인 78년 4월 같은 장소에서 사물놀이의 성립을 알리는 제2회 연주('영남풍물 12차 36가락')가 있었으며, 이날 공연이 끝났을 때 민속학자 심우성 씨 등 지기들은 이들의 성공적인 공연을 축하하며 '사물(四物)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사물"이란 이들이 연주하는 4개의 악기를 뜻하며, "놀이"란 농악대나 걸립패들의 공연을 지칭해 온 낱말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1979년 5월에 1978년의 작업을 종합적으로 발표하는 기회를 갖게 되는데, 이는 사물놀이의 희망찬 앞날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사물놀이'는 자신들을 그냥 사물놀이라고 부르지만, 사물놀이단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지금, 밖의 사람들은 그들을 다른 단체와 구별하기 위해 '김덕수패 사물놀이'라고 흔히 부른다.
창단멤버였던 김용배, 김덕수, 최태현, 이종대는 곧바로 김덕수, 김용배, 최종실, 최종석으로 새로운 팀을 구성했다가 1979년에 최종석이 이광수(www.leekwangsoo.com)로 교체되었다.
이 무렵은 그들이 눈부신 활동이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기 시작한 때였는데, 1983년 들어 꽹과리를 치던 김용배가 음악적인 견해차이를 이유로 탈퇴, 국립국악원 사물놀이를 창단했으나 1986년 복잡한 추측을 남긴채 자살하고 말았다.
사물놀이는 김용배 대신 강민석을 영입하여 이광수(쇠), 김덕수(장고), 최종실(북), 강민석(징)으로 자리바꿈한 채 이어오다가 1990년대 들어 이광수와 최종실이 떠나고 지금은 김덕수와 강민석이 사단법인 사물놀이 '한울림(www.nanjangcultures.com)'을 창단(1993)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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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사람들에게 농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굿 또는 매구 또는 풍물은 지금은 민속경연대회나 텔레비젼의 국악프로에 이따금씩 등장하여 잠깐식 두드리다 마는 이상스러운 음악으로 변한 것 같지만, 예전에는 마을의 축제나 제사나 일이나 장례의식때에 반드시 소중한 '삶의 음악'이었다.
정초에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그 집의 액을 몰아내고 복을 빌어주는 마당밟이 굿을 쳤고, 김맬때에는 농부들끼리 계 비슷한 모임인 두레를 짜서 두레풍장을 치기도 했다. 김매기가 끝난 칠월에는 호미씻이 굿을 쳐서 고된 일을 하는 머슴들을 위로하기도 했고, 시월에는 농사가 끝나면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당산에서 당굿을 치며 감사의 놀이를 벌이기도 했다. 또 농사일에만 굿을 친 게 아니라 바닷가 마을에서는 고기 잡으러 나가는 뱃사람들이 무사히 고기를 많이 잡아오도록 비는 배치기 풍장을 쳤고, 그리고 절에는 절굿을, 집 지을때는 집들이 굿을, 다리를 놓을때에는 다리굿을 쳤다.
이밖에도 나라의 행사나 군사훈련이나 전쟁때나 사냥할때나 상여 나갈때와 같이 우리 민중들의 의식과 일과 놀이에 안 쓰인 데 없이 두루 쓰였으니 어느 음악 유산보다 우리 민족의 삶에 깊숙이 연결된 민중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농악 연주하는 것을 '굿친다' '매구친다' '풍장친다' '풍물친다'라고 한다.
농악이 글로 처음 나타난 것은 1936년 총독부에서 펴낸 '부락제(部落祭)'라는 책에서였다. 따라서 농악이라는 말은 일제시대 때 일본학자들에 의해 생긴 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농악이란 말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농민(농사꾼)의 음악'으로 여겨질 수 있다. 원래 풍물굿이 농경사회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농민들 스스로 농악이라고 불렀던 적은 없었고 일제의 민족 말살정책의 하나로써 일본의 탈놀이 능악(能樂)의 발음인 '노가꾸'를 본떠서 농악이란 말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일본제국주의는 우리의 민속신앙을 말살(민족정기 말살정책)하고 농업장려의 목적에 한해서만 풍물굿을 허용했다. '농악'이란 이름으로 신청을 해야만 굿판을 열 수 있었기 때문에 굿하는 단체나 마을들이 농악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신청을 한 데서 일반화되다가, 8.15 해방 이후 많은 학자들이 국악이론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농악이라 부르게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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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놀이가 우리 가락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한 점이나,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고도의 기예를 발전시킨다는 장점도 있으나 풍물이 가지는 총체적이고 대동놀이적인 성격을 소멸시키고 무대화시킴으로서 연희자와 관객을 분리시켜 개인주의적인 문화유통구조를 심화시키는 문제점이 있다.
원래 풍물은 가만히 앉아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연희자와 관객의 구분없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며 또 그래야만 제대로 신명이 나는 풍물판이 형성되는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 우리는 '풍물놀이'와 '사물놀이'를 명확히 구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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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놀이의 역사
우리는 사물놀이라는 말을 마치 한국의 전통예술 중에서 꽹과리, 징, 장고, 북을 가지고 뭔가 예술적인 행위를 하는 어떠한 장르를 일컫는 보통명사로 쓰고 있지만 사실 사물놀이는 1978년에 생긴 한국전통타악연주 단체에서 자기네들 스스로 붙인 단체의 이름이었다.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였던 셈이다. 그러면 사물놀이의 탄생을 더듬어 보자. 먼저 우리의 조상님들이 농사법을 알아 서로 무리를 지어 살던 그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사람이 농사를 지을 줄 알게 되면서 땅을 일구기 좋은 곳에 무리를 지어 철따라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며 무리 중에서 지혜로운 자를 우두머리로 뽑아 발로는 땅을 딛고 머리는 하늘을 이고 그 가운데 조화를 이루며 살았으니 이것이 곧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불과 수 십년 전까지도 우리의 땅에서 고스란히 누려져왔다. 그런데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농사를 지을 때 가장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하늘의 움직임이다.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아무리 사람이 땅에다가 피땀과 정성을 쏟아서 농사를 지어도 하늘이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다 허사가 되더라는 말이다. 이러한 자연의 흐름을 보고 사람들은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서로 잘 통해야만이 그 안에 사는 사람이 풍요롭고 평안해질 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이 떠 받드는 우두머리를 앞세워 좋은 날을 가려 하늘과 땅에 제사도 지내고 축제를 벌이기도 하였으니 이것이 곧 '제천의식(祭天儀式)'이다. 이 때의 우두머리는 '단군 할아버지'였고 그는 한 부족의 왕이자 유일한 제사장-쉽게 요즘 말로는 '무당(巫堂)'-이었으니 감히 왕이 아니면 백성의 뜻을 모아 하늘과 땅을 우러러 제사를 지내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이 제천의식에는 반드시 음주가무(飮酒歌舞)가 따랐으며 놀이와 음악이 빠질 수 없었다. 이러한 모습을 상형문자로 나타낸 것이 바로 '巫(무)'자인데 이 글자의 윗부분을 가로 지은 획은 하늘을 상징하고, 아랫부분의 가로 지은 획은 땅을 상징한다. 그리고 하늘(天)과 땅(地)의 사이에는 사람들(人+人)이 있어서 이 天·地·人이 하나로 잘 조화를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힘을 모아 제사와 축제를 벌이는 것이 나타나있다. 이것을 우리말로는 '굿'이라고 한다. 이 때 이러한 대동(大同)의 굿판에서 우리 조상님들께서 누리셨을 음악의 모습은 당연히 '두들소리', 즉 타악(打樂)이 그 시초이며 기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무언가를 두드려서 무리를 하나되게 하고 그 하나된 무리의 힘을 모아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일은 이렇듯 우리의 삶 속에서 싹튼 것이며 이것이 곧 사물놀이의 시원이다.
그 이후 왕은 규율을 세워 백성들을 다스리거나 다른 부족을 침탈하여 그들의 곡식과 노고로 부강해지거나 반대로 외적을 막는 일 등의 권력자의 역할이 강해지면서 하늘을 달래어 땅에서의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제사장의 기능은 떨어져 나가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역사는 점점 복잡다난한 쪽으로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이렇듯 역사의 흐름속에서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두들소리'의 모습과 방식 또한 '마을풍물굿'과 '무굿' 그리고 '전문연희패'등의 그것으로 크게 나뉘게 된다. '마을풍물굿'은 우리가 흔히 농악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서 앞서 말한 굿의 전통이 가장 잘 살아서 있는 형태로 최근까지 전승되어 왔다. 이는 농사가 주업인지라 두들소리에는 당연히 비전문가인 사람들이 풍습과 관습에 따라 그들의 공동체적인 삶 속에서 연행(演行)되어진 것이다. '무굿'은 남을 대신하여 제사와 축제를 주관하는 무당이라는 전문가가 살을 풀고 신명(神明)을 돋우는 여러 형태를 말한다. '전문연희패'는 '봉산탈춤패'등과 같은 탈춤패나 '남사당(男寺堂)' 등의 '전문유랑예인집단'을 일컷는데 이른바 서양에서의 'Gypsy'를 연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비록 이들은 떠돌이였으나 최고의 기량과 예술성을 자랑하던 이들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에게는 연희능력이 곧 생활의 수단이며 판을 벌리는 곳이 바로 생활의 터전이므로 각종 놀이에 대한 학습이 엄격하여 아무리 행중(行中)에 오래 몸을 담았어도 학습이 미진하거나 재능이 뒤떨어지면 제대로 한 몫을 받지 못하였고,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재주가 있어서 혼자서 여러 몫을 한다면 또한 그만한 댓가를 받곤 하였기 때문이다. 이 세가지의 큰 갈래 중에서 사물놀이의 모태가 된 것은 '전문유랑예인집단'인 '남사당(男寺堂)'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여러 '굿'판-어떤 형태로든 사람의 뜻과 정성을 모아 제사를 지내고 놀이를 하는-에서 우리 조상님들의 삶과 함께 하여 왔던 우리의 두들소리는 일제 36년간의 강점기간 동안과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 등과 그 이후 우리민족이 거쳤던 서구화, 근대화의 과정에서 우리의 삶과는 점점 유리되어 갔다. 이러한 시기에 과거 전문예인유랑집단으로서 이름을 날리던 남사당에서 최고의 예기(藝技)를 익히며 잔뼈가 굵은 20대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한 때는 판이 벌어지면 온갖 귀염과 사랑을 독차지하며 몇 몫의 놀이채를 받았던 재간동이들이었으나 그 들이 20대가 된 1970년대에는 그들이 나래를 펼칠 만한 판 또한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들이 뭉쳐서 사물놀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굿판을 벌리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사라져가는 굿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 노력은 진정한 의미의 전통이란 사라진 무엇이 아니라 끊임없이 살아 꿈틀거리며 이 시대와 교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각에서 출발하였다. 그것은 우리 조상님들의 얼과 신명이 담긴 가락과 몸짓을 이 시대의 정서와 모습에 맞게 재창조하는 일이었다. 그 시작이 1978년 2월이였고 그 때 여러 분의 뜻을 모아 지은 단체의 이름이 바로 "우리 풍물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꽹과리, 징, 장고, 북의 네 가지 악기를 가지고 놀이를 하는 두들소리패"라는 뜻의 [사물놀이]였던 것이다.
사물놀이의 여러 모습들
이른바 사물놀이라고 하면 좀 아시는 분들은 '비나리' '삼도설장고가락' '삼도농악(풍물굿)가락' 그리고 '판굿'등의 레퍼토리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 네 가지가 사물놀이가 내보이는 모습의 모두인 것으로 여기시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위의 그 네 가지 곡목(?)이 오늘의 사물놀이를 있게 만든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기는 하지만 사물놀이가 과거 조상님들이 남겨주신 위대한 유산을 오늘을 사는 우리의 정서와 감각에 맞게 재창조하였던 바로 사물놀이의 예인정신은 여기도 결코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창조적인 실험이나 다른 예술분야와의 만남, 그리고 예술적 자기발견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오로지 "두드리면 열린다"라는 소박한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우선 사물놀이의 대표적인 네 가지 연주곡목을 살펴보자. '비나리'는 사물의 가락 위에 축원과 고사덕담의 내용을 담은 노래를 얹어 부르는 것인데 한마디로 제의성이 매우 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비나리는 사물놀이의 공연에서 맨 앞에 놓여진다. 비나리로서 공연의 문을 열어서 오신 모든 분들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다. 이 비나리로 공연을 시작할 때는 사물놀이의 무대입장은 무대 뒤에서가 아니라 객석 뒤의 극장 출입문에서이다. 그것도 사물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비나리를 하기 전에 '문(門)굿'을 침으로서 사물잽이들이 왔음을 알리고 문굿이라는 통과의례(通過儀禮)를 통해 그 안의 사람들과 비로소 같은 공간의 기(氣)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문굿은 북의 점고(點鼓)소리로 시작하여 사물이 한바탕 어우러진 뒤 상쇠가 문 안에 대고 이렇게 외친다.
문엽쇼 문엽쇼 오방신장(五方神將) 문엽쇼. 만인간(萬人間)이 들어갈 때 만복(萬福)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다시 '덩덕궁'가락으로 그 문을 지나고 객석을 지나 무대에 올라서는 지신(地神)을 누른 뒤 비나리를 시작하는 것이다. 비나리의 사설에 담고 있는 내용을 보면 누가 들어도 좋은 말로만으로 짜여져 있는데 창세내력과 살풀이, 액풀이, 축원덕담 등이 주요 내용이다.
'삼도설장고가락'은 과거 경기·충청도와 호남, 그리고 영남지방의 삼도(三道)에서 명성을 날리던 장고의 명인들의 가락을 모아 사물놀이가 정리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사물놀이적인 감각과 또한 이 시대 최고의 장고잽이인 김 덕수의 독특한 가락이 덧붙여져 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여타의 설장고놀이의 가락 엮음새가 [다스름-휘모리-동살풀이-굿거리-덩덕궁]의 순서인데 반해 사물놀이의 삼도설장고가락은 [다스름-굿거리-덩덕궁-동살풀이-휘모리]의 순서로 되어 있어 마치 산조(散調)가 다스름 이후의 장단을 느린 것부터 빠른 것으로 늘어놓은 것과 같은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실 설장고놀이는 장고에 능한 상장고(上長鼓) 같은 이가 혼자 나와서 서서 장고를 치면서 여러 가지 춤사위나 자기만의 독특한 버슴새 등을 보여주는 식인데, 사물놀이는 네 명의 연주자 모두가 앉아서 연주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설장고의 놀이성보다는 음악적인 면이 강조가 된다.
'삼도농악(풍물굿)가락' 역시 삼도의 대표적인 풍물굿 가락을 모아 앉은반의 형태로 연주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물놀이'하면 떠올리는 사물놀이의 대표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이 삼도농악가락은 사물놀이의 초창기에는 말 그대로 '영남농악(풍물)'이니 '웃다리풍물'이니 '호남우도굿'이니 하는 이름으로 따로따로 나뉘어져서 연주되었었지만 그 뒤에 이 셋을 한데 엮어지게 되는데, 한 발 늦게 삼도설장고가락이 레퍼토리로 되면서 부터라고 생각된다. 삼도설장고가락이 장고를 통해서 연주자의 기량과 음악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삼도농악가락은 꽹과리, 징, 장고, 북의 사물을 가지고 우리의 가락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음양의 원리와 자연의 이치를 수많은 세월을 통해 학습하고 다져온 깊고 넓은 호흡으로 동그랗게 떠 올려 감고 감아가며 쌓아서 혹은 오므리고 혹은 부풀리며 한데 어우러진다. 이러한 삼도농악가락의 장단 짜임새는 [점고-경술-호남우도굿(오채질굿-우질굿-좌질굿-풍류-덩덕궁)-영남농악(별달거리)-웃다리풍물(짝쇠)]의 순으로 되어있다.
위에서 얘기한 비나리는 제의성이 강하고 삼도설장고가락과 삼도농악가락은 음악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면 판굿은 한마디로 놀이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판굿에서 사물잽이들은 머리에는 상모를 쓰고 사물을 손에 들거나 몸에 메거나 하여 발로는 땅을 딛어 박차고 머리로는 하늘을 휘젓고 손으로는 사물을 울리어 듣는 이의 몸과 마음을 뒤흔들어 이 모두를 하나로 아우른다. 그것을 위해 사물잽이들은 마치 무당이 작두를 타듯 끝없는 신명과 터질 듯한 몸짓으로 온 몸과 마음을 내 던진다. 자기가 치고 있는 가락에 얹힌 발딛음과 상모의 사위가 하나가 되어서 다른 잽이의 그것과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보고 듣는 이와 더욱 크게 하나가 되어 천지인(天地人) 모두를 아우를 수 있으니 어찌 보면 사물놀이의 백미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상의 네 가지가 이른바 사물놀이의 대표적인 고정 '레퍼토리'이다. 그러나 사물놀이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앞서 말한 대로 다른 공연예술의 갈래와의 실험적, 창조적 만남이나 무속(巫俗)의 사물놀이화 등의 시도를 잠시도 멈추지 않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만 나열을 해 보면 [사물놀이를 위한 국악관현악-'신모듬'] [사물놀이와 피아노의 만남-'열두거리'] [사물놀이와 오케스트라의 만남-'푸리'나 '마당'] 등과 사물놀이 초창기부터 시도되어 온 강태환 Jazz 그룹, 흑인 둘과 백인 둘로 구성된 Jazz 그룹인 Red Sun을 비롯한 국내외의 여러 Jazz 그룹이나 Rock 그룹과의 만남, 그리고 이애주 교수의 창작춤인 '바람맞이' 부터 승무, 살풀이, 태평무, 진쇠춤 등에 이르는 전통무용과 심지어는 Jazz Ballet의 음악 등 사물놀이가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찾기 위해 시도한 실험적이면서도 창조적인 만남과 모색은 실로 다양하다는 표현을 넘어설 정도이다. 그리고 이번에 소개되는 곡들 또한 사단법인 사물놀이 한울림 예술단의 새로운 해석과 시도의 산물이다.
호흡이란 무엇인가 ?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연주자와 악기가 있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가락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가 하나로 조화되지 않는다면 그 연주는 그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여러 연주가 모여서 합주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얘기는 좀 더 심각해진다. 그렇다면 결국 연주자와 악기와 가락이 하나로 삼위일체를 이루어야만이 참 된 연주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라 할 것이다. 여기서 사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호흡'을 얘기한다. 어떠한 가락을 어떠한 악기에 얹어 내 온 몸과 온 마음으로 하나되는 것을 두고 "호흡을 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호흡의 개념을 굳이 말로 정리해 보면 이렇다.
호흡이란 어떠한 장단(Rhythme)의 얼개와 흐름에 잘 어울린 몸의 움직임과 마음쓰기 그리고, 그것들의 조화 장단 속에 깔려있는 숨구멍들이 변할 때마다, 그것들의 흐름이 굽이칠 때마다 거기에 맞게 온 몸을 움직이고 온 마음을 써서 그 예술적 표현을 제대로 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 연주하고 있는 서로가 하나로 어울리는 것을 '호흡을 한다'라거나 '호흡을 하나로 만든다'등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너 나 할 것 없이 느껴지는 일렁임이야말로 참신명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을 두드림으로써 서로 하나가 되어 어울리고자 한다면 먼저 자기가 치고 있는 가락과 제대로 하나가 되어야 하며 이러한 온 몸과 온 마음을 다하는 구체적인 모습을 호흡이라고 한다는 얘기이다. 그러므로 호흡이란 연주의 기교나 연주자의 음악성에 우선하여 실현되어야 할 기초이며 또한 궁극이다.
사물놀이를 듣거나 보면서 우리는 크나큰 기운이 생동함을 느낀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의 훌륭한 재료로 부터 비롯된다. 우선 꽹과리, 징, 장고, 북이라는 강한 울음을 가진 악기들이 있으며 또한 우리 조상님들께서 남겨주신 장단의 다양함과 변화무쌍함은 타 민족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리고 오늘의 연주에서 보여지듯 이러한 우리 장단의 오묘한 세계를 수 많은 세월동안 피땀으로 학습해 온 공력으로 더 더욱 치열하게 표출하고 있는 사물잽이들이 있기 때문이며 이 치열함은 곧 '호흡'으로서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장단을 다스리고 거기에 맞게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어우러지게 하는 방법은 한마디로 '둥글게 감아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장단에 맞는 우리 마음쓰기의 가장 기본이고 핵심이다. 둥글다는 것은 원(圓)이요, 곧 구(球)이니 부드러움과 포용을 뜻한다. 그리고 감아간다는 것은 용솟음이요, 힘이다. 이 두 가지의 상반된 개념이 음양의 조화로 아우러지듯이 우리 장단에 몸과 마음을 잘 일렁거리는 것을 호흡이라 한다. 이 호흡이라는 것은 재주를 타고났다고 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요, 무조건 죽어라고 두드린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지금도 사물놀이 한울림은 두드리고 두드린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 믿으며, 온갖 지혜와 정성을 다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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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받는 자료
ㆍ 김덕수 사물놀이 결정판, 킹레코드, 199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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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리는 고사를 지낼 때 부르는 '고사소리'라고도 하며, 한해의 액이나 집, 마을의 액을 물리치기 위한 액풀이, 축원덕담이나 살풀이 등으로 이루어진다. 비나리는 갑자기 닥칠지 모르는 횡액을 막아주고, 항시 인간을 끼고 도는 살을 풀어주고, 인간의 수명과 명복 등을 기원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비나리 사설과 소리는 진행하는 순서에 따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부분은 빠른 장단에 많은 말을 얹어서 부르는 액풀이, 살풀이 등이다. 이 부분은 쇠를 치는 상쇠가 소리를 하고 나머지 사람은 악기만 치는 것이 예사이다. 둘째 부분은 명복을 기원하는 대목이다. 이 부분은 상쇠가 소리한 부분을 이어서 나머지 사람이 합창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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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나리(1) * 사물놀이(넌서치 레코드, 1983)
비나리(1)은 김덕수패 사물놀이에서 연행되는 것으로 국립국악원 사물놀이에서는 '경기비나리' 라고도 한다. 사물놀이 초창기부터 불려지다가 80년대 중반 이후로 덕담.축원 부분에 많은 변화를 보인다.
천지개벽 이후의 현세가 이루어진 뿌리
천개-우주 구태민안 이씨한양 봉황이 대궐앞에는 |
하날이요 법난추 등극시 생겼구나 육조로다 |
지개조축 세화연풍 삼각산 봉황눌러 |
땅생길제 도나들고 기봉하고 대궐짓고 |
오양문 왕십리 종남산 동작강 여천지 차일은 해동이면 세계의 몽중살을 |
하각산은 청룡이요 안산되고 수구막고 무궁이라 사바세계 대한민국 여러분들 풀고가자 |
각도각읍을 동구만리 과천 관악산 한강수 원아는 남선은 각내의 몽중살 |
마련할제 백호로다 화산이 비쳐 둘러싸니 금여찬데 부주로다 각가정과 없을소냐 | 살풀이
몽중살은 원근도중에 몽상입어 장인 삼촌 이웃지간에 흙을 달아 산 나무 산에 오르니 |
직송살이요 이별살이요 거상살이요 복채살 회살살이요 토살이요 목신살 산신살 |
살풀어서 부모 돌아가 거상벗으니 동네방네 도적난데는 돌달아서 죽은 나무는 들로 내리니 |
내릴살 몽상살 탈상이라 불안살 실물살 석살인데 동토살 들농살이요 |
산에 올라 물로 내리니 앞마당에 혼인대사는 건너방에는 이벽저벽에 애기난데는 일체액살을 원강에 만사가 마음과 뜻과 |
산신살은 용왕살이요 회룡살 주당살이요 근옹살이요 벽파살 삼신살 휘몰아다 소멸하니 대길이요 잡순대로 |
들로 내리니 바깥마당 지붕마루는 마루대청 안방삼간 내외지간 화택밑에 금일정성 건구건명 백사가 소원성취 |
들농살 벼락살 용충살 성주님살 접어드니 공방살 동아살 대를 바쳐 여러분들 여일하고 발원이라 | 덕담축원
(합창) 상봉길경에 불-공만-재로구-려 만-재수야 아헤- 에헤에난이구려 여-얼 사랑하-십소-사 나-하 어허-미- 어허미로다 어허어허어- 어허-미 |
(독창) 나-모아- 일십일만 아둥 도산 불명 불에만 |
꾸방정토 구천구백 금상에도 보살이로다 |
극락세계 동명 부모 여래신데 |
삼십육만은 자비 대비 무량서기 |
(합창) 여-래야- 아-헤- 에헤에난이구-랴 여러열 사랑하-십소-사 나-하- 어허-미 어-미로다 어허어허어-어허- |
(독창) 복만 많고요- 복이 없이는 긴명은 백세 상수를 인간의 이 일에 |
명이 짧아도 못사느니 사려담어 누려살제 오복 만사가 |
못사느니 짜른명은 무쇠 목숨에 명도 주고 만복을 소원만 |
명만 길어도 잇어주고 돌끈달아 복도 주고 점지하니 성취구려 |
(합창) 만-복이라- 에헤- 사실지라도 늘-여서 사-대만 사십소-사 나-하 에헤-어- 어허미로다 어허어허어- 어허어허어- |
(독창) 건구건명전에는 만고액살 우환질병 금일 정성 |
여러분들 제쳐줄제 잡귀잡신 대를 바쳐 |
만복을 삼재팔난 일체 액살을 춘순풍 |
받았거니와 관재귀설 휘몰아다 불거들랑 |
(합창) 월미도 앞강에 소멸을 합시다 영창-목에 행여-나 복일지라도 고재풀이며 삼재풀이며 동미조강 의주 압록강에다 덩-기덩 두두 두둥실 떠-내려 버렸습니다 나-하 어허-미- 어허미로다- 어허어허어허-미 |
● 비나리(2) * 사물놀이 10주년 기념음반(SKC, 1988, 소리 : 이광수)
비나리(2) 역시 김덕수패 사물놀이에서 연행되는 것으로 비나리(1)과 유사하지만 덕담.축원 부분의 내용이 80년 중반 이후로 다르게 불려지고 있다. 현재 많은 사물놀이패들이 연행하는 비나리이기도 하다.
천지개벽 이후의 현세가 이루어진 뿌리
천개우-주 국태민안 이씨한양 봉황이 대궐앞에는 |
하늘이요 범년자 등극시 생겼구나 육조로다 |
지개조축 시화연풍 삼각산 봉황눌러 |
땅생길제 돌아들고 기봉하고 대궐짓고 |
오양문 왕십리 종남산 동작강 여천지 차일은 해동이면 몽중살 |
하각산은 청룡이요 안산되고 수구막고 무궁이라 사바세계 대한민국 없을소냐 |
각도각읍을 동구 만리가 과천 관악산 한강수 원아는 남선은 이댁 가정에 몽중살 |
마련할제 백호로다 화산이 비쳐 둘러싸니 금여찬데 부주로다 드시거들랑 풀고가자 | 살풀이
몽중살 원근에 몽상입어 장인 삼촌 이웃지간 흙을 달아 산 나무 |
직성살 이별살이요 거상살이요 복채살 회살살이요 토살인데 목신살 |
살풀어서 부모 돌아가 거상벗어 동네 방네는 도적난데는 돌달으면 죽은 나무 |
거리살 몽상살 탈상이라 불난살 실물살 석살이라 동토살이라 |
산에 올라 물로 내리니 앞마당에 혼인대사 건넌방에는 이벽저벽 애기난데 내금신 팔만사천 굴뚝은 다루뚝에 살강밑에 금일고사 건구건명 백사가 소원성취 |
산신살 용왕살이요 회룡살이라 주당살이요 근옹살 벽파살 삼신살 조왕신 조왕대신 굴때장군 세요각시 땡그랑 각시 대를 바쳐 이댁 가정에 여일하고 발원이라 |
들로 내리니 바깥마당 지붕마루는 마루대청에 안방을 내외지간에 화택 밑에는 외금신 아궁이는 물두멍은 콩독팥독 일체액살 원강에 만사가 마음과 뜻과 |
들농 벼락살 용충살 성주님살 접어들어 공방살 넉마살 조왕신 금덕귀 용녀부인 마태장군 휘몰아다가 소멸하니 대길하고 잡순대로 | 덕담축원
(합창) 상봉길경에 불-공만-재로구-려 만-재수야 아헤- 에헤에난이구려 여-얼 사랑하-십소-사 나-아 어허-미- 어허미로다 어허어허어허-미 |
(독창) 축원이 갑니다- 오신 가족 여쭈신델랑 헐지라도 |
덕담가오 문전 축원 남의 댁 가정 건구건명 |
발원이 갑니다 고사 덕담 남의 댁 동중 이댁 가정으로 |
오날 여기 지성 정성으로 이러니 저러니 드시거들랑 |
(합창) 밤이 되면 |
불이나 밝으시고요 |
낮이 되면 |
물이나 맑아 |
(독창) 밤이 되면 물불은 옥쟁반 금쟁반 얼음위에도 봉황같이도 천금같은 |
불이 밝고 상극인데 순금쟁반에 백로같소 잘살 때 아들따님 |
낮이 되면은 어르사속경 진주를 오동나무 건구건명 성명삼자로 |
물 맑아 고명같소 굴린듯 상상가지 이댁 가정 저달만 그린 듯이 |
(합창) 달-과-야- 에헤- 사실지라도 늘-여서 사-대만 사십소-사 나-아 에헤- 어-미로다 어허어허어허-미 |
(독창) 건구건명 꿈결잠시 어디아니 댕기행자 노중액살 서로 가면 남으로-가-시면 무지개 발로 여러분께 |
이댁 가중 보냈건만 출입을 허랴 올래자 제쳐주고 만고복덕 소원이 성취 휘어다가 전법하니 |
작년같은 신년새해 멀원자 출입을 왕래 동으로 가면 북으로 가면 동서사방 서기발로 이일 만사가 |
해후년을 접어드니 가까울근자 헐지라도 재수소망 수명장수 흩어진 재물 나꿔다 소원이 성취로구려 |
(합창) 만-복이야- 에헤- 사실지라도 늘-여서 사-대만 사십소-사 나-하 에헤- 어-미로다 어허어허어허-미 |
(독창) 복만많구요 복이없이는 긴명은 백세상수 옛날옛적 점지를 왕개석순에 만고액살 우환질병 금일정성 월미도 |
명이짧아도 못사느니 사려 담어서 누려살제 삼천갑자 하시고 복을 주리 일쳐줄제 잡귀잡신 대를 받쳐 앞강에 |
못사느니 짜른명은 무쇠목숨에 명을랑은 동방삭의 복을랑은 만복은 삼재팔난 일체액살 춘순풍 소멸을 |
명만길어도 잇어주고 돌끈갈아 주시려면 기나-긴 명을 주시려거든 받았거니와 관재구설 휘몰아다 불거들랑 합시다 |
(합창) 영창-목에 행여-나 복일지라도 오대풀이며 삼재풀이며 동미조강 의주 압록강에다 덩-기덩 두두 두둥실 떠-내려 버렸습니다 나-하 어허-미- 어허미로다 어허어허어허-미 |
비나리(3) * 두레패 사물놀이(대성음반, 1993)
비나리(3)는 두레패 사물놀이에서 연행되는 것으로 경기도 지역은 물론 황해도 지역의 사설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흥청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서산 앞쪽 월출 동녘에 인생이라 회생할 길 |
지는 해는 뜨는 달은 허는 것은 아예 없네 |
내일 아침에 오늘밤에 청춘가고 |
다시 돋고 오련 만은 백발 오니 |
사바세계 열두도액 아 - 헤 - 이달월에 우환질병 아 - 헤 - 금일고사 만사가 아 - 헤 - |
남선부주 막아내고 동서사방 달에과액 걱정근심 삼적사적을 대를 바쳐 대길된 후 소원성취 |
해동은 제일 동서사방 밝혀줄 제 관재구설 삼적사적을 휘몰아다 원강으로 소원성취 발원이요 |
대한민국 밝혀줄 제 재산취사 휘몰아다 소멸하고 발원이요 |
천개우주 국태민안 이씨한양 봉황이 대궐 앞에 |
하날이요 범난추 등극시 생겼구나 육조로다 |
지개조축 시화년풍 삼각산 봉황 눌러 |
땅 생길 제 도나들고 기봉하고 대궐짓고 |
오영문 왕십리 종남산 동작강 여천지 차일은 해동이면은 오늘 이 자리에 백사가 소원성취 |
하각산은 청룡이요 안산이요 수구 막고 무궁이라 사바세계 대한민국 오신 분들 여일하고 발원이라 |
각도각읍을 동구 만리 과천 관악산 한강수 원아는 남선은 각 내의 만사가 맘과 뜻과 |
마련할 제 백호로다 화산이 비쳐 둘러치니 금여찬데 부주로다 각 가정과 대길하고 잡순대로 |
그건 그렇다 명을 빌고 일백은 석순에 정칠팔월 |
하려니와 복을 빌어 육십세라 복을 받아 비실적에 |
삼천갑자 선팔십 강태공에도 오복을 |
동방석에 후팔십 날을 빌어 골고루나 |
딸을 나면 은을 준들 은자동아 나라에는 일가친척 어집소사 |
효녀 낳고 너를 사며 금자동아 충신동 우애동 자갑소사 |
아들 나면 금을 준들 만적청산 부모님전 세상천지 |
효자로다 너를 사랴 보배동 효자동 일월동아 |
글일고사의 일년은 남녀노소 인중수로다 각 내의 거부장자가 |
덕담대로 열두달 상관없이 점지하야 각 가정에 되옵소사 |
원강 만복 삼백은 천중세월 오날 여기 태평성대 |
받으실 제 육십여일 돌아오면 오신분들 누리면서 |
상봉일경에 불봉만 재로구나 만재수야 아헤-에헤에난이구냐 열의열 살아가십소사 나하- 봉-헤- 어험이로다 봉-어미- |
옛날옛적 둥실둥실 가자공덕 없는 애기 없는 재산을 백사가 동서남북 신유술해 일년은 |
제갈공명 춤을 추고 효자충신 점지하고 점지하여 여일하여 사해 밟아 열두돌 액맥이 |
진법으로다 평생 심중에 열녀 여류가 있는 애기 만사가 맘과 뜻과 자축인묘 휘 - 휘 - 훨 - 훨 - |
심으시고 잡순 마음 발원인데 수명장수 대길하고 잡순대로 진사오미 둘러 날라주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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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받는 자료
ㆍ 두레패 사물놀이 1, 2집, 대성음반, 1993 ㆍ <풍물굿에서 사물놀이까지>, 김헌선, 귀인사, 1991 ㆍ <한국음악 제27집 '사물놀이'>, 국립국악원, 1992 ㆍ 서울 봉천놀이마당 민속자료집, 1994 ㆍ 사물놀이 10주년 기념음반, SKC, 1988 ㆍ Samulnori(Drums And Voices Of Korea), Nonesuch Records, 198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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