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조(散調)란 독주곡을 말한다. 산조는 시나위 가락에서 발전되어 생긴 기악곡이다. 산조는 보통 3악장으로 연주되는데, 느린 장단에서 시작되어 점점 빠른 장단으로 변화되어 연주된다. 기본장단은 진양조, 중모리, 자진모리인데, 중모리와 자진모리 사이에 중중모리와 엇중모리가 들어가기도 하고, 자진모리 다음에 더욱 빠른 휘모리와 단모리가 들어가기도 한다. 다만, 거문고는 빠른 가락 표현이 쉽지 않을뿐만 아니라, 악기의 특성상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휘모리, 단모리와 같은 빠른 장단은 쓰지 않는다.
산조의 틀, 즉 형식을 최초로 완성한 사람은 전라남도 영암(靈巖)출신의 김창조(金昌祖:1865~1911)라고 한다. 김창조는 가야금은 물론, 거문고, 양금, 피리, 해금, 퉁소 등 대부분의 중요 국악기에 통달한 음악가로, 19세기 말엽에 가야금으로 산조형식을 완성하였다 한다.
당시의 가야금 산조는 악보는 없고, 더욱이 녹음기가 없던 시절이라 그 가락이 어떤 것인지는 알수가 없다. 그러나 그의 문하에서 가야금 산조의 대가 한성기(韓成基), 최옥삼(崔玉三), 강태홍(姜太弘), 김종기(金鐘基), 안기옥(安基玉) 등이 배출되어 이들 가락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이들 산조는 각기 독자적인 가락으로 발전되어 왔지만, 더러 공통된 가락도 있고, 가락의 주된 흐름이 유사한 것이 꽤 되며, 음악의 짜임새, 즉 구성방법이 특히 진양조에 있어서 같기 때문에, 이들 산조가 다 같이 김창조 산조로부터 변형·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고, 그 원형이었던 김창조 산조가 이미 상당한 예술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확신케 해준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산조의 길을 처음 연 것은 가야금이다. 가야금에서 시작된 산조는 이후 거문고 산조, 퉁소 산조, 대금 산조, 피리 산조, 해금 산조, 아쟁 산조 등으로 확대된다.
거문고 산조를 처음 만든 것은 백낙준이다. 거문고는 당시만 해도 선비들이 즐겨 타던 품위있는 악기였다. 그래서 거문고를 백악지장(百樂之將)이라 했다. 즉 모든 음악을 지휘하는 장군이라는 뜻이다. 그런 장군이 산조같은 저속한 음악을 할수 있는가 하는게 당시 통설이었다. 그러나 선비가 거문고의 이치를 알면 민중도 그 이치를 아는 법. 시나위판에서 거문고를 타던 백낙준은 이런 통설을 과감히 깨고 거문고 산조를 만들었던 것이다. 백낙준이 만든 거문고 산조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박석기와 김종기에게로 이어지고 다시 한갑득, 신쾌동, 김윤덕에게로 이어진다.
 박종기는 젓대를 하도 목이 메이게 불어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한다. 젓대는 대금이다. 박종기가 붉은 피를 한 움큼 쏟아내고 죽은 그 자리에 젓대산조가 피기 시작한다. 한주환 그리고 한범수로 이어지고 다시 서용석, 김영동 그리고 이생강으로 이어진다.
해금은 묘한 악기다. 앙증맞은 애첩이 앙탈을 부리는 애교넘친 소리 같기도 하고 거지들의 동냥소리같이 처량하기도 하고, 굿판에서 신바람이 붙은 소리같기도 하다. 그래서 해금은 아주 섬세한 표현과 해학적인 표현 그리고 신명난 표현에 다재다능한 악기다. 지영희는 경기지방의 굿가락을 근간으로 독특한 지영희류 해금 산조를 만들었고, 한범수는 전라지방의 굿가락을 근간으로 한범수류 해금 산조를 만들었다. 이들 해금 산조는 신청에서 신명을 내는 무당의 춤바람만큼이나 신에 겨운 가락이다.
이외에도 아쟁, 퉁소 그리고 단소 산조 등등이 있는데 아쟁산조 외에 퉁소나 단소산조는 안타깝게 전하지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