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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

천지인야 2016. 6. 17. 10:27

 

 

 

 

보신각 종


조선초기인 태조5년(1396년)부터 도성의 4대문(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과 4소문(혜화문, 소덕문,

 광의문, 창희문)을 일제히 여닫기 위해 종을 쳐왔는데 새벽에 치는 종을 '파루(罷漏)'라고 하였으며, 저녁종을

'인정(人定)'이라 했다.


파루(罷漏)는 오경삼점(五更三點)인 오전 4시경에 33번을 타종하여 통금을 해제하고, 도성8문을 열어 그날의

활동을 시작해도 됨을 알리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33번의 타종은 불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33天으로 분신하는데, 이 때문에 33번을 타종하였다고 합니다.


인정(人定)은 밤 10시경 통행금지를 알리기 위해 28번을 타종하고 도성의 문을 일제히 닫았다고 합니다. 28번

 타종의 의미는 고대 천체를 동,서,남,북의 4궁으로 가르고 각궁을 다시 7등분한 28區(또는 28宿)내의 별자리

수를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서울의 제야의 타종은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시민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

하는 의미로 매년 행해지고 있습니다.


조선이 개국한 후,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긴 것이 태조 李成桂였다면, 한양을 건설한 것은 개국 1등공신

이자, 성리학자인 鄭道傳이었다. 鄭道傳은 都城(도성)을 쌓고, 陰陽五行(음양오행)사상에 입각해, 4대문과 4소문

만들었다.


그리고 동쪽 문을 興仁門(흥인문), 서쪽을 敦義門(돈의문), 남쪽을 崇禮門(숭례문), 북쪽을 弘智門(홍지문)이라고

 명명했다. 五行사상에 따르면 仁義禮智(인의예지)는 東西南北(동서남북)과 같은 방위를 나타낸다. 우리가


오늘날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이라고 부르는 것은 속칭이요, 위의 이름이 공식 명칭이다. 북쪽문은 북문이라고

 했으며, 훗날 한양에 淫風(음풍)이 이는 이유가 풍수지리상 북문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없어졌다.


그런데, 실제로는 동대문을 가리키는 문은 興仁門(흥인문)이 아니라, 興仁之門(흥인지문)이라고 해서 갈 之자가

 더 붙어 있다. 한양에서 남쪽을 향해 바라볼 때, 主山(주산)은 북악산이요, 좌청룡은 駱山(낙산), 우백호는

仁旺山(인왕산)이다.


그런데 우백호에 비해 좌청룡이 너무 약하다. 자식에 비유하자면, 좌청룡은 장남, 우백호는 차남 이하를 가리킨다.

약한 좌청룡을 보완한다는 의미에서 興仁門(흥인문)에 之자를 덧붙인 것이다.


풍수지리적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裨補(비보)에도 불구하고 역대 조선 왕 가운데 장남으로 흥한

임금은 거의 없다.


五行사상을 따른다면 당연히 중앙에도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중앙을 의미하는 말은 信(신)이다. 그래서

서울 한 복판인 종로1가에 普信閣이라는 건축물을 축조한 것이다.


방향을 나타내는 색깔도 있다. 靑白赤黑은 東西南北을 가리킨다. 중앙은 黃(황)이다. 고구려 고분에 나오는

 靑龍(청룡), 白虎(백호), 朱雀(주작), 玄武(현무)는 모두 방위를 가리키는 靈物(영물)이다.


우리나라의 별칭이 靑丘(청구)인 것은 중국에서 볼 때, 동쪽(靑)에 있는, 句麗(구려), 또는 九黎(구여)라는 의미다.

붉을 朱는 赤과 같고, 검을 玄은 黑과 同義(동의)다. 그리고 중앙에 坐定(좌정)해서 정치를 하는 임금님의 옷은

당연히 黃色(황색)으로 지어야 한다.


종은 조선 세조 14년(1468) 만들어 신덕왕후정릉 안에 있는 정릉사에 있었으나, 그 절이 없어지면서 원각사로

 옮겨졌고 임진왜란 이후 종루에 보관했다.


고종 32년(1895) 종루에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걸게 되면서 보신각종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서 보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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