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文話/♧ 戀書

영흥도

천지인야 2011. 7. 10. 13:52

 

햇살이 밝은 오월 하순의 주말 하루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러 떠난 길엔

바람에 밀려 흐르는 영흥도가 있었다.

 

마음만 내키면 언제든 훌쩍 다녀올 수 있는 거리였지만

두시간 안팎 지척의 거리를

반백의 세월이 지나서야 발을 딛는다.

 

정해진 여행의 틀을 벗은 여정이지만

더없는 사랑을 내포한 정인(情人)의 세심한 배려속에

춘몽처럼 하루가 겁없이 흐른 날...

 

"언제든 가리...나의 이니스프리로!" 라고 읊었던 시인의 마음처럼

향수를 부르는 한적한 서도의 따뜻한 풍경은

세사를 내려 놓는 포근한 정경이었음을... 

 

 

지중해 프로방스 미풍이 이러했을까?

해풍에 밀려 오는 라벤다 향기가 이러했을까?

신록의 푸르름과 화사한 햇살

코끝을 간지르는 선한 바람의 유혹.

 

세상과 격리된 또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느낌

억겁의 세월조차 무색한 덤덤한 바다

간간이 갯벌위를 유영하는 갈매기의 날개위로

하늘은 무채색 수묵화를 그려낸다.

 

반투명 비닐창 밖 서해의 풍경은 실루엣으로 번지고

조개 굽는 어여쁜 정인의 얼굴엔 더없는 사랑의 미소가 번지고...

한 잔 한 잔 흐르는 알싸한 낮술의 취기는

흐르는 세월에 매듭을 엮듯 시간을 정지시키고...

 

너와 나 아니면 뉘라서 이런 시간이 있으리

그대와 나 아니면 뉘라서 이런 풍경이 있으리

당신과 나 아니면 뉘라서 이런 사랑이 있으리

우리가 아니면 그 뉘라서 이런 행복이 있으리

 

 

열린 창 틈새로 날아든 모기와 전쟁을 하고

열락의 천국에 행복한 동행도 하고

어둠이 드리운 서도의 밤바람이 너무 좋아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찾은 바닷가

 

썰물에 섬처럼 갇힌 외딴 고깃배는 설움이 아닌 희망이었다

언젠가는 찾아 들 밀물을 기다리며 평온한 휴식을 갖는...

시원한 해풍에 조용히 날리던 한밤의 연가

속삭이듯 밀려드는 사랑의 언어들

 

천근같은 아쉬움을 껴안고도 

돌아서 오는 길이 무겁지 않았음은

행복한 시간들이 차곡차곡 축조되어 있었기에...

행복한 시간들을 두고 두고 추억할 수 있었기에...

 

산다는 게 각본없는 드라마 같다고 말하지만

가슴에 소중하게 간직될 작품 하나

감동의 드라마 한 편이 제작된 하루

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주연이 된 명작으로 남을 드라마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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