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學習/♧ Simple♤ Life

통일신라의 음악

천지인야 2013. 9. 9. 16:12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음악을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당나라의 음악도 받아들여 그 음악을 한층 풍부하게 발전시켰다. 또한 이 때에는 불교음악과 향가도 성했다.

◈ 삼현(三絃)과 삼죽(三竹)

통일신라시대의 향악을 대표하는 아기는 삼현과 삼죽이다. 삼현은 세 가지 대표적 현악기인 가야고, 거문고, 향비파를 말하고 삼죽은 세 가지 대표적 관악기인 대금, 중금, 소금을 말한다. 이러한 통일신라의 삼현삼죽은 가야금과 노래, 혹은 춤이 편성되는 통 일전의 형태에 비하여 발전된 형태로 불 수 있는데, 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여 고구려와 백제의 음악문화를 흡수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며, 실제 음악에서는 삼현 삼죽과 박판, 대고가 곁들여진 편성으로 웅장한 음악을 연주하였다. 이처럼 발전된 음악문화는 중국 당나라의 음악을 받아들이면서 대편성이던 당악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한편 삼현의 하나인 고구려악기 거문고의 전승과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삼국사기』에 전하고 있다. 거문고는 신적(神笛)으로 알려진 만파식적과 함께 국보로 천존고에 보관되었다가 경덕왕 때(742∼764)의 사람 옥보고에 의하여 거문고 음악이 발전되었다. 옥보고는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50년동안 거문고를 익히고 새로운 거문고곡 30곡을 지었다. 그 금도(琴道)를 속명득이 이어받아 귀금선생에게 전했으나 귀금선생 또한 지리산에 들어가 나오지를 않자 신라왕의 명을 받은 윤흥이 안장과 청장이라는 두 소년을 지리산으로 보내어 거문고를 배워오도록 했다. 윤홍이 지극한 정성 끝에 안장과 청장은 귀금선생이 비장한 표풍 등 세 악곡을 전수 받았고 안장은 그의 아들 극상과 극종에게 그 음악을 전했으며 극종은 일곱 곡을 지었다. 극종 이후에는 거문고로 업을 삼는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 당악과 불교음악의 대두

당악의 유입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 귄6 신라본기 문무왕조에 문무왕 4년(664년) 성천과 구일 들 28명을 부성에 보내 당악을 배우게 했다는 기사이다. 부성은 당나라 군대가 머물던 군영이 있었던 웅진부성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이 때에 배운 당악이란 군대음악인 고취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악이 통일 신라시대에 차츰 뿌리내렸으리라는 것은 향악기의 악조명에 월조, 황종조, 반섭조 등 당악의 악조명이 사용된 것으로도 짐작된다. 뿐만 아니라 당악기인 바판과 대고는 이미 삼현 삼죽과 함께 향악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통일신라가 구체적으로 당나라의 어떤 음악을 받아들여 연주하였는지는 자세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한편 신라는 불교를 가장 늦게 받아 들였으나 공인된 후에는 신라의 사상적 주류로 형성되었고 범패와 거사소리 등 불교의식이나 포교활동으로 불린 음악이 성행하였다. 진감선사 대공탑비문이나 일본승 원인 자각대사가 쓴 『입당구법순례행기』에 의거하면 통일신라시대에는 세 가지 유형의 범패가 있었다.

즉, 토속음악에 바탕한 신라향악풍의 범패가 있었고 진감선사가 당나라에서 새로운 범패를 배워오기 이전에 유입된 고풍(古風)의 범패가 있었으며 진감선사가 당에서 배워 퍼뜨린 당나라 신풍(新風)의 범패가 있었다. 또 원효대사는 민중불교인 정토교 전파를 위하여 스스로 광대처럼 무애가라는 노래를 부르고 춤추며 포교활동을 했는데 이 거사소리는 범패와 쌍벽을 이루면서 민중불교음악의 전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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