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감수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유성기가 들어 왔을 당시의 일이다.
고종 황제가 일본에 와 있던 빅터 회사의 기사인 코란을 초청하여
어전에서 원통식 녹음기를 설치하도록 하였다.
그 당시 명창이던 박춘재가 뽑혀 나와, 나팔통에 입을 대고 원시적인 녹음을 했다.
나중에 원통식 납관에서 박춘재의 판소리가 다시 흘러나오자
고종은 깜짝 놀라며"춘재야, 네 수명이 십 년은 감했겠구나"라고 했다.
박춘재의 정기가 녹음기에 빼앗겼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로부터 십년감수라는 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