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學習/♧ Epi ♤ Story

상투

천지인야 2013. 9. 9. 09:58


성인 남자들이 꾸민 머리. 옛날에는 총각들이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가, 결혼을 하거나 관례를 치르면 머리털을 끌어올려 정수리 위에서 틀어 감아 삐죽하게 만들고 거기에 동곳을 꽂아 고정시킨 다음 망건을 썻다.
망건
망건은 상투머리가 흘러내리지 않게하는 머리띠의 일종이다.

상투관
상투에 씌우는 관으로 주로 상류층에서 이용하였다. 모양은 양관을 축소시킨 것으로 나무 종이, 가죽, 뼈, 뿔 등으로 만들며 머리정돈겸 수식용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머리 숱이 적은 노인들이 관을 쓸 때에 상투에 덧씌우기도 하였다. 간단한 것은 검은 종이나 배로 만들었고 가죽, 뼈, 뿔 등으로 만든 것은 흑칠을하여 사용하였다. (조선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신체발부 수지부모, 즉 신체의 모든 것은 부모한테 물려받은 것이므로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부모한테 물려받은 머리털을 보존하기 위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상투를 틀었다.

상투는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나온 구절만으로도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상투튼 모습을 볼수 있고, 신라의 토용가운데 인물상에서도 상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몽골이 지배한 때를 빼고는 상투를 틀었다.
몽골이 지배할 때 관료들은 변발을 해야 했지만, 공민왕이 배원정책을 실시하면서 변발을 폐지하고 다시 상투를 틀었다. 이 상투가 오늘날처럼 짧은 머리가 된 것은 고종 33년(1895) 을미개혁으로 단발령을 실시하면서 부터이다.

상투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혼한 남성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일단 상투를 틀면 어른으로 대접받았고, 나이를 더 먹어도 상투를 틀지 못한 사람에게는 반말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린 신랑에게 봉변당하지 않으려고 나이 많은 노총각은 결혼과 관계없이 상투를 틀고 다녔는데, 이를 건상투라고 했다. 이처럼 상투는 결혼한 남성의 상징구실을 하여 단발령이 실시되자 유생들은 거세게 저항하는 의병운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 단발령과 반대 통문

1895년(고종 32년)에 남성들에게 상투를 자르도록 내린 명령.
김홍집 내각이 을미사변 이후 내정 개혁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당시까지 써 오던 음력 대신 양력을 쓰기로 하면서 단발령도 아울러 공포하였다.

고종도 스스로 서양식으로 이발을 하였으며, 내부에서는 강제적으로 국민에게 상투를 자르도록 하였다. 그러자 전통적인 유교 사상에서 머리털을 소중히 여겨 오던 선비들의 반발이 대단하였다. 뿐만 아니라 단발령 자체가 일인의 배후 조종에서 나온 것이라 판단하여, 을미사변으로 악화되어 있던 배일 감정이 폭발하여 의병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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